직업 인증 규정 전무…노동가치 인정 등 법제도 개선 시급

논·밭농사는 물론 농산물 가공·유통, 농촌 관광 등 농가 수익의 대부분을 여성농업인이 책임지고 있지만, 법적·사회적 지위는 전업주부에도 미치지 못해 개선이 시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농촌진흥청 농촌자원개발연구소 최윤지 박사가 지난달 25일 한나라당 정책위원회 주최로 열린 ‘여성농업인 지위향상방안 및 지원제도 토론회’에서 밝힌 자료에 따르면, 농업종사자 중 여성은 53%로 남성보다 많지만 이중 82%가 법적인 농업인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현행 법령상 농업인으로 인정받으려면 300평 이상의 농지를 소유하고 있거나 연간 100만원 이상의 농산물 판매수입이 본인 명의의 통장으로 입금돼야 하는데 대부분 남편 명의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90일 이상 농업에 종사한 사실을 증명하는 방법도 있지만 시행령이나 시행규칙 어디에도 ‘증명을 관장하는 기관’에 대한 규정은 없다.

이 때문에 대다수의 여성농업인이 교통사고를 당해도 전업주부(무급가족종사자)로 분류되고 있으며, 치료 기간 동안 입은 농작물 피해에 대해서는 전혀 보상받지 못하고 있다. 본지가 지난해 9월 보도한 여성농업인 박정개(60·부산)씨의 경우에도 입원하는 동안 한해 농사를 망쳐 8000만원 상당의 피해를 입었지만 보상금은 11일 입원치료 비용인 34만원에 불과했다.

문제는 전업주부 보상금도 농촌지역에 거주하는 여성이 더 적은 금액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보험사의 보상금 책정 기준은 피해자가 거주하는 지역의 여성 일용임금이다. 농협중앙회가 지난 2004년 2월 발표한 여성 농업노동 임금은 약 3만6000원(남성 5만5000원)이었던 반면, 같은 시기 여성 도시일용 임금은 약 5만2000원(남성과 동일)으로 나타나 농촌 거주 전업주부가 1만6000원이나 적었다.

조희숙 생활개선중앙회장은 “이러한 불평등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농업인의 자격을 규정한 농업·농촌기본법 시행령에 여성농업인의 지위를 ‘공동경영주’로 명문화하고, 해당 읍·면장에게 확인서를 발급받는 인증절차를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영국·독일·벨기에·덴마크·네덜란드 등 외국에서는 농지 부부 공동명의 등 재산공유제를 통해 여성농업인의 법적 지위를 인정하고 있다.

조 회장은 이어 “여성농업인의 법적 지위가 인정되면 그동안 남편만 받았던 연금보험료 국고지원을 여성도 받을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농림부는 소득이 낮은 농어촌 지역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법적 농어업인을 대상으로 연금 보험료의 일부를 농어촌특별세에서 지원해주고 있다.

강혜정 한국농촌연구원 전문연구원은 “여성농업인이 농가의 핵심인력으로 부상하고 있는 상황에서 젊은 여성들을 농업으로 유인하기 위해서는 도시 직업여성과 동등한 직업적 지위와 혜택이 보장돼야 한다”고 강조하고 “제도개선과 병행해 여성농업인의 노동가치가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도록 남성농업인을 대상으로 한 양성평등 교육의 실시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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