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혁명 전통의 시작
이런 상황에서 러시아 기존체제에 반기를 든 첫번째 사건으로 러시아 혁명 전통이 싹트게 된 시발점이 1825년 일어난 ‘12월 사건’이다. 러시아를 침공한 나풀레옹을 추격해 파리에 입성했던 귀족장교들은 러시아가 서양에 비해 후진적인 나라임을 깨닫고 체제를 변화시키고자 시도한다. 혁명을 준비하며 조직을 만들지만 알렉산더 1세가 사망하고 이들의 음모가 발각되면서 거사를 치르지도 못한 채 일망타진되고 만다.
이렇듯 혼란스러웠던 러시아의 운명을 가르게 된 사건이 바로 크리미아 전쟁(1853~56)이다. 러시아의 남하를 저지하려는 프랑스와 영국이 일으킨 이 전쟁에서 참패한 후 러시아는 개혁을 급히 서둘러 1861년 농노제도를 폐지시키고 대개혁의 시대에 들어선다. 농노제도 개혁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지주들의 세력을 급격히 약화시킬 수 없고, 농노들을 땅 없이 해방시킬 수도 없었던 러시아의 선택은 절충안. 지주들의 토지를 유상 몰수해 농노들에게 나눠주고, 토지 대금을 오랜 기간에 걸쳐 조금씩 나눠갚게 했다.
그러나 이런 절충안은 귀족과 농민 양쪽 모두를 만족시키지 못했다. 이미 위로부터의 개혁만으로는 러시아 사회의 모순이나 요구를 감당해낼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밑으로부터의 진짜 혁명을 일으키자는 움직임이 일어나기 시작했고, 농민들을 계몽시켜 혁명을 일으키려는 농민 계몽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났다.
1881년 발생한 알렉산더 2세 암살사건은 황제를 신처럼 여겼던 러시아 국민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줬다. 암살을 주도한 세력은 가장 과격분파였던 ‘인민의 의지’라는 20명가량의 지하서클. 마르크스주의를 바탕으로 한 혁명의 불씨가 점점 더 커져갔다. 1895년부터 투쟁연맹을 만들어 노동자들 사이에서 혁명운동을 시작하던 레닌에 의해 1899년 러시아 최초의 마르크스주의 정당인 ‘사회민주노동당’이 지하에서 발족하게 된다. 이후 농민사회주의를 외치는 사회혁명당 등이 잇달아 생겨나 전제군주 체제와 정면으로 맞서는 혁명세력의 결속이 시작된다.
혁명을 막기 위해선 러시아 민족의 애국심을 불러일으키는 길밖에 없다고 생각한 황제는 1904년 일본과 ‘러일전쟁’을 벌인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러시아는 참패를 당하고 전쟁이 채 끝나기도 전 러시아 혁명이 시작된다.
1905년 제1차 러시아 혁명이라 불리는 ‘10월 선언’이 발표되고, 니콜라이 2세는 의회를 창설, 러시아 최초로 전제군주의 독재가 아닌 법을 따르는 사회체제가 시작된다. 그러나 이때의 의회는 주권체로서의 의회가 아니라 황제에게 조언하는 수준에 머물렀고, 충분히 효력을 발휘하기 전에 1차대전이 발발하고 만다.
볼셰비키 혁명과 로마노프의 몰락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러시아는 애국심을 발휘시켜 나라를 지키려 했지만 레닌은 처음부터 전쟁을 혁명 발발을 위한 구실로 삼고자 했다. 전쟁으로 참혹한 처지가 된 병사나 농민들 사이에서 혁명 선전이 먹혀들어가기 시작했고, 1917년 ‘2월 혁명’과 ‘10월 혁명’이라는 두 차례의 혁명이 차례로 일어났다.
추운 날씨에 빵을 사기 위해 줄을 서 기다리던 시민들이 폭동을 일으켰고, 이를 진압하러 갔던 군부마저 시위대에 가담하게 된 것이 2월 혁명의 시작이었다. 국회에 의해 임시정부가 세워지고 로마노프 왕조 시대는 막을 내리고 만다.
그러나 러시아 임시정부는 전쟁 계속 정책을 고수해 대중의 불만은 높아져만 갔다. 스위스에 망명 중이던 레닌이 독일이 제공한 봉인열차편으로 귀국, ‘전쟁을 즉시 종결시키고 모든 권력을 소비에트로 집중시키겠다’는 구호를 내걸고 임시정부에 대항한다. 노동자와 병사들로 구성된 볼셰비키파는 10월 혁명을 일으켜 임시정부를 전복시키고 반대하는 세력을 진압, 사회주의 혁명에 성공한다.
스탈린의 ‘피의 숙청’
‘냉전 체제’의 시작
‘소련’(소비에트 연합)을 세운 레닌은 ‘누구나 능력대로 일하고 배분받는 사회’라는 구호를 내세웠다. 그러나 생산력 증강을 위해 농민과 노동자에게 강제노동을 시키는 레닌의 정책은 대중의 반발을 일으키고, 신생 정권을 위기로 몰아갔으며, 1924년 레닌이 저격당하고 나자 그루지아 노동자 계급 출신인 스탈린이 권력을 장악한다.
스탈린은 정권을 잡자 형식적인 재판을 통해 반대세력을 제거해나가는 ‘피의 숙청’을 시행한다. 1938년 막을 내린 피의 숙청은 동시대 혁명인의 70%가량을 제거한 대대적인 작업이었다. 스탈린은 공업 5개년 계획과 농업 집단화를 선포하며 생산력 증강정책을 추진하지만 달성 불가능한 높은 목표와 채찍을 통한 무리한 추진으로 문제가 됐다. 스탈린은 철저한 정보 통제와 숙청작업으로 대내적인 불만을 무마시키는 한편, 대외적으로 선전에 공을 들여 세계 각국에 공산당 세포조직을 만드는 데 주력한다.
히틀러의 나치가 유럽의 새로운 세력으로 등장하자 영국과 미국 등은 소련과 손을 잡고 독일을 침공한다. 러시아는 독일에 레닌그라드가 900일 이상 점령당하는 상황에서도 굴복하지 않고 버텨 마침내 독일 패전을 이끌어낸다. 그래서 지금도 러시아인들은 “현재의 인류문명을 나폴레옹과 히틀러로부터 구한 것은 러시아인”이라고 말하고 다니곤 한다. 2차 대전 승리 이후 소련은 동구유럽을 공산국가로 만들 수 있었고, 세계는 미·소를 양극으로 하는 ‘냉전체제’에 돌입한다.
고르바초프 개혁과 소련의 몰락
공산주의 하에서는 열심히 일해도 똑같은 대우를 받으니 대중의 불만이 쌓여갔다. 1985년 고르바초프의 등장은 소련 사회에 일대 변혁을 초래한다. 생산성이 저하돼 더 이상 강압적으로 나가면 최소한의 체제유지도 힘들게 되자, 고르바초프는 공산주의를 포기할 수밖에 없음을 깨닫고 사회주의 체제를 본래의 이상대로 돌려놓겠다는 ‘페레스트로이카’, 즉 개혁정책을 추진한다. 대내적으로는 ‘페레스트로이카’(개혁), 대외적으로는 ‘글라스노스트’(개방)란 실용적인 정책을 펼치며 국가 통제를 완화하고, 시장경제제도를 도입했으며, 대통령제를 도입해 1990년 고르바초프가 구소련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된다.
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 초, 러시아에 가보면 정말 비참한 상황이었다. 당 간부들은 자신들의 권력으로 얻은 호텔방, 물건 등을 외국인들에게 비싼 값에 팔아먹고 공장장들은 마음대로 자재들을 빼돌려 파는 등 뒷돈 거래가 성행하고, 이로 인한 신흥 재벌들이 나타났다. 그런 시기를 거쳐 지금의 시장경제로 차츰차츰 전환하게 된 것이다.
고르바초프의 개혁정책 하에서 소련 내 각 공화국들의 독립 움직임이 크게 일어나게 된다. 1990년 러시아는 독자적인 러시아 공산당을 출범시키고, 옐친은 1991년 러시아 공화국의 대통령으로 당선된다. 마침내 1991년 12월 11개 공화국이 카자흐스탄의 수도 알마티에서 CIS(Commonwealth of Independent States·독립국가연합) 결성에 합의함으로써 구소련은 완전히 해체되고 1992년 1월1일자로 러시아를 비롯한 각 공화국은 독립국가가 된다.
푸틴 대통령의 ‘강력한 러시아’
대통령에 오른 옐친은 러시아의 시장경제로의 이행을 가속화한다. 일반 국민 입장에서 공산주의 때는 굶어 죽지는 않았는데 자본주의가 되면서 월급조차 나오지 않게 됐다는 불만들이 속출하자 보수세력에 의해 옐친 탄핵안이 제출되기도 했으나, 옐친은 국민투표를 통해 신임을 재확인하고 강경한 조치를 취하면서 개혁정책을 더욱 강력하게 추진한다.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와 1999년 체첸의 분리독립을 요구하는 체첸 반군의 거센 활동 등 위기상황에서 2000년 대통령에 선출된 푸틴은 ‘강력한 러시아’라는 슬로건 하에 서방세계에 강경한 입장을 취하게 된다.
현재 러시아 사람들은 소련 해체 후 그나마 남은 나라들도 분리독립을 주장할까봐 걱정이 많다. 그래서 체첸 분리주의자들을 진압하는 등 강력한 러시아를 주장하는 푸틴 대통령은 국민들에게 인기가 많다. 전환기 사회에선 강력한 국가가 필요하다는 국민적인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