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마을 사람들’은 1995년 수유동에서 ‘녹색 삶을 위한 여성들의 모임’이라는 이름으로 지역 여성들이 중심이 되어 만들었다. 이들은 ▲돌봄이 필요한 마을 아이들을 함께 키우는 공부방인 ‘마을 속 작은 학교’ ▲관심과 지지가 필요한 어린이와 그 가정에 직접 찾아가는 ‘사랑의 책 배달부’ ▲다문화 가정을 지원하는 ‘다문화 사랑방’ ▲마을 아이들의 신나는 책 읽기를 위한 ‘어린이 도서관’ ▲마을 환경강사 양성 등 일반적인 지역활동으로 시작해 다양한 문화운동으로까지 그 범위를 확대했다.
단체의 설립부터 관여한 정외영 이사는 “먹고 사는 문제와 아이들 뒷바라지에 늘 바쁘고 고단한 시간을 보내던 주부들이 여유가 생겨 좀 더 자신에게 집중하고 싶은 새로운 욕구에 직면하더라도 ‘이제까지도 안 하고 살았는데 무슨’ 하는 마음에 선뜻 나서지 못하고 주저앉는 경우를 목격하고 안타까웠다”며 “이런 이웃들이 굳이 멀리 찾아가지 않아도, 경제적 부담을 느끼지 않고서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마음에 활동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들이 활동을 진행하며 놀란 것은 자신들이 사는 동네가 소중한 인재들이 넘치는 ‘보물 창고’라는 사실이다. 작가 허정회씨, 신인 영화감독 신동엽씨, 영상감독 김현식씨, 문화 애호가 김종현씨 등 지역 인재들은 직접 강사가 되어 문화강좌를 진행했다. 2010년부터는 이전까지는 수강생의 역할에 그쳤던 참가자들이 직접 소집단(동아리)을 만들면서 문화 소비자를 넘어 건강하고 창의적인 문화 생산자의 역할도 하기 시작했다.
‘꽃무지’는 읽고 싶은 책을 선정해 함께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모임이다. 처음에는 오랫동안 논술 지도를 해온 이희숙씨가 주도해 모임을 이끄는 강의 형식이었으나, 최근에는 참가자들이 자발적으로 책을 선택하고 돌아가며 발제하고 토론하는 형식으로 바뀌면서 참가자들이 더 높은 호응을 보이고 있다.
꽃무지의 회원인 30대 주부 김연희씨는 “수동적인 강습에만 길들여져 있어 처음에는 적극적으로 준비해야 하는 발제가 두려웠던 것이 사실”이라면서도 “회를 거듭하면서 책을 읽으며 느끼는 궁금한 점을 알기 위해 인터넷을 뒤지고 멀게만 느껴졌던 대문호들을 마치 주위사람처럼 이해하게 되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고 전했다.
이밖에도 다양한 음악을 감상하는 ‘희락당’, 함께 영화 보기를 통해 영화가 담고 있는 주제와 메시지에 대해 서로 느낌과 생각을 주고받는 ‘0.4.2’(영화를 사랑하는 이웃들), 칙칙한 동네 담벼락에 알록달록 그림을 그려넣는 ‘포도송이’ 등의 동아리가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이들은 1년에 한 번 ‘골목축제’도 벌인다. 축제는 각 동아리가 1년 동안 활동한 내용을 발표하는 것은 물론, 끼 있는 지역주민들이 작은 콘서트도 열고 골목사진전과 연애편지전 등의 이색 전시회도 여는 등 다채로운 문화행사들로 꾸며진다.
축제 기획에 참여한 30대 주부 장명심씨는 “문화제를 준비하는 동안 아이의 설렘과 엄마의 설렘이 일상의 즐거움이 되었고 서로가 소통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며 “매일의 평이했던 삶이 특별해지고 재미있어지는 이런 경험을 이제는 더 많은 이웃들과 나누고 싶다”며 웃었다.
다른 사람이 하는 문화를 보고 즐기는 것을 넘어, 스스로 자신의 생각과 느낌, 끼를 드러내고 그것을 성장시키는 것에 더 관심을 가지고 이를 바탕으로 자신과 이웃의 이야기를 꾸려가는 기쁨을 맛보는 풀뿌리 시민단체 ‘녹색마을 사람들’. 이 신명으로 골목문화가 또 한 발 앞으로 나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