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에 눈떠 변모하는 여성의 모습, 무척이나 매력적이죠”
‘위기의 여자’ 등 여성 삶 주제로 새로운 연극… 주부 관객 사로잡아
“‘나는 잘 살고 있는 걸까’ 성찰하는 데 보탬 되는 연극 하고파”

딸, 아내, 어머니 그리고 할머니. 여자가 평생 살면서 ‘보통명사’로 가지는 4개의 이름이다. 여기에 깊은 공감의 울림을 넣어 평생 “여자를 그려온” 연출가 임영웅(75·사진) 극단 산울림 대표. 얼마 전에도 그는 ‘아름다운 꿈 깨어나서’(윤대성 작)를 무대에 올려 환갑을 넘긴 60대 여성들의 삶에도 애증, 섹스 등 새로운 삶에 대한 무한한 역동적 에너지가 있음을 설파했다. 서교동 홍대 입구 길가에 오롯이 자리 잡은 그의 산울림소극장엔 그래서 중년이거나 모녀로 보이는 여성 관객들의 발걸음이 줄을 잇는 진풍경이 벌어지곤 한다. 극장을 나오는 그들의 표정엔 여전히 감흥이 서려 있다.

80년대 중반, 무대에 ‘이혼’ 얘기 올리는 도전 감행

 

임영웅 극단 산울림 대표cialis coupon free discount prescription coupons cialis trial couponprescription drug discount cards blog.nvcoin.com cialis trial couponcialis manufacturer coupon site cialis online coupon
임영웅 극단 산울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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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지 기자
지난 10월 24일 오전, 산울림소극장 1층 카페에서 그와 얼굴을 마주하고 “연극이 뭐냐면 사람을 그리는 예술”이란 평소 그의 지론이 이 대가의 손에서 어떻게 여성의 정체성을 탐사하는 작업으로 이어졌는지를 들어보았다. 그가 연출한 ‘위기의 여자’(시몬 드 보부아르 작),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박완서 작), ‘엄마는 오십에 바다를 발견했다’(드니즈 샬렘 작), ‘딸에게 보내는 편지’(아놀드 웨스커 작) 등 성공을 거둔 일련의 연극들에 대해 통칭되는 ‘여성연극’이란 말에 그는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인간엔 여성과 남성밖에 없으니 그냥 연극일 뿐, ‘남성연극’이란 말은 없지 않느냐”며 그 어휘가 주는 감상적일 것이라는 편견과 폄하가 싫다고 했다. 굳이 일련의 작품들을 묶어서 말하고 싶다면 “여성의 삶을 주제로 한 연극”이란 다소 길지만 정확한 표현으로 말해달라는 주문과 함께.

“시작은 산울림극장 개관 1주년 기념작으로 선택한 ‘위기의 여자’부터였다. 극장을 1년간 운영해보니 60·70년대 연극 관객 80% 이상이 여성이었는데, 그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들이 볼 만한 연극이 별로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내가 1975년 번역한 보부아르의 ‘위기의 여자’는 10여 년간 20만 부 이상이 팔린 스테디셀러인데, 책 1권에 평균 5명 정도가 돌려봤다고 어림짐작해 보면 100만 명 이상은 이 작품을 알 것이고, 그렇다면 그 5~10% 정도의 관객은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막연히 생각했다. 우연치 않게 86년은 이화여대 개교 100주년, 즉 우리나라에 근대 여성교육이 들어온 지 100년이 되는 해라서, 이쯤 되면 그동안 금기시돼온 ‘이혼’을 주제로 한 연극도 가능하지 않을까도 생각했다.”

그는 ‘위기의 여자’가 철학자가 써서 어려울 것이라는 선입견을 갖는 사람도 있지만, 줄거리는 지극히 단순하고 흔한 우리 주변 얘기라고 말한다. 요약하면, 믿었던 남편이 바람을 피울 때 그 아내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얘기지만 “여주인공이 과거형의 여자에서 자아에 눈떠가면서 새로운 시대에 맞게 변모해가는 과정이 범상치 않게 매력적인 작품”이라고 덧붙인다. 공연은 첫날부터 성황을 이루었고 8개월간 5만여 명의 관객이 다녀갔다. 이를 계기로 그는 극장의 일관된 하나의 주제로 ‘여성 삶’을 택하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42년째 연출 중인 ‘고도를~’에 예술관 응축시켜

요즘 그는 ‘노년의 삶’을 새롭게 그리는 데 몰두하고 있다. 얼마 전 공연을 마친 60대에 접어든 세 여자의 이야기 ‘아름다운 꿈 깨어나서’를 포함해 지난해 무대에 올린 ‘한 번만 더 사랑할 수 있다면’은 퇴직 후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는 세 남성을 그리고 있다. 모두 70대 또래인 작가 윤대성씨와 호흡을 맞춘 작품들이다.

“기존 노인연극이 회상조의 얘기라면, 내 연극은 현 시점에서 지금의 노인들은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에 초점을 맞춘다. 지금 60·70대는 더 이상 노인이 아니다. 뒷방 늙은이로 주저앉기보다는 팔팔하게 살 수 있고 미래를 위해 열심히 사는 노인들이다. 사랑도 얘기할 수 있고 지금까지의 삶과는 다른 새로운 계획도 세울 수 있다. 극장 문을 나서는 노인 관객들로부터 ‘우리도 잘 살 수 있겠네’란 말을 들으며 보람을 느낀다.”

‘연출가 임영웅’을 얘기할 때 ‘고도를 기다리며’(사뮈엘 베케트 작)를 빼놓을 수 없다. 올해로 42년째 1000여 회가 넘도록 ‘고도를~’을 고집스레 무대에 올려왔는데, 이는 세계 연극사에서도 극히 드문 일이다.  그러나 정작 그는 굳이 세월과 횟수를 세지 않는다며 “100년을 무대에 올려도 못 하는 연극은 못 하는 연극이다. 공연이 얼마나 충실하게 완성도가 높은가가 중요하지”라며 한없는 자부심과 애정을 드러낸다. ‘고도를~’은 근래 들어 거의 매년 정기적으로 관객을 찾고 있다. 올해도 어김없이 11월 6일까지 산울림소극장에서 공연 중이다.

“우리의 모든 삶은 기다림의 연속이다. ‘고도’처럼 꼭 결실이 있는 기다림은 아닐지라도. ‘고도를~’은 기다림의 지루함을 무대화한 작품이다. 기다림이 없다면 사람들은 무슨 힘으로 살까, 종종 생각한다.”

그는 특히 이 한 작품 속에 자신의 예술관이 응축돼 있다고 생각한다.

“‘고도를~’처럼 인간의 순수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다방면으로 여러 가지 연극적 기법을 동원함으로써 인간을 깊이 있고 폭넓게 그린 희곡은 없다고 생각한다. 같은 작품을 42년째 해오면서도 늘 새로운 작품을 만나는 것 같고, 앞선 공연에서 깨닫지 못한 사실을 새롭게 발견하곤 한다. 혹 이번에 발견 못 하고 놓친 것이 있다 할지라도 다음 공연에선 발견하겠지 하는 마음이다.”

그의 연극 인생을 얘기할 때 아내인 불문학자 오증자 전 서울여대 교수를 빼놓을 수 없다(이들 부부는 평등 파트너십으로 2001년 여성신문 선정 명예 평등 부부로 선정되기도 했다). ‘고도를~’을 비롯해 무대에 올리는 외국 작품 대부분이 아내의 번역을 거쳐 무대에 올려졌다. 그는 1961년 신문기자 시절 당시 이화여고 교사였던 아내를 만났다. 

“아내와 나는 ‘전우’”… 아들은 예술감독·딸은 극장장으로 ‘연극인 가족’

“아내와 나는 ‘전우’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전쟁터에서 전우의 우정은 세속적인 것을 초월해 목숨을 같이하고 같이 피를 흘리는 것이다. 연극하기가 아주 어려운 대한민국에서 아내와 나는 죽기 살기로 연극을 한다.”

휘문고 시절 동랑 유치진 선생이 발행하던 주간지에 학예부장으로 연극 관련 좌담회에 참석했다가 동랑으로부터 “자네 앞으로 연극 공부할 생각 없나”란 권유를 받은 것이 숙명적 예언으로 작용했을까? 그는 1955년 서라벌예대 재학 당시 모교 휘문고의 부탁으로 동랑의 작품 ‘사육신’을 통해 연출가로 데뷔한 후에도 “(KBS교향악단의 초대 지휘자 등 한국의 대표적인 음악인으로 활동했던 숙부 임원식 등을 배출한 음악가 집안이라) 너희 세대는 제발 예술은 하지 말아라”는 할아버지의 압력으로 기자, 드라마 PD를 거치며 연극계 언저리에 머물렀었다. 그러다가 예그린악단 창단 공연으로 한국 창작 뮤지컬의 효시라 할 수 있는 ‘살짜기 옵서예’를 올려 성공을 거둔다. 그리고 얼마 후 국립극단에도 데뷔하면서 본격적인 연출가의 길을 걷게 됐다. 그러면서 연극을 지속적으로 하려면 ‘극단’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이 절실해진다. 이후 김용림, 사미자, 윤여정, 윤소정, 손숙, 최선자, 김성옥, 함현진, 김무생 등을 창립 멤버로 해 산울림극단을 1970년 창단하고, 그 15년 후 소극장을 개관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살고 있는 집을 팔아서라도 극장을 짓자고 용기를 준 사람은 오히려 아내였다. 그는 “극장 운영이 어려울 때마다 그만두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은 우리 집에서 나 한 사람뿐”이라고 웃으며 말한다. 아내는 개관 때부터 극장 대표를 맡아 26년간 그의 한쪽을 지탱해왔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파리 소르본 대학에서 아버지가 일생 매달린 베케트를 주제로 박사학위를 따고 서울여대에 재직 중인 그의 아들은 예술감독으로, 오랜 미국 생활에서 돌아온 그의 딸은 극장장으로 산울림의 새로운 지원군이 됐다. 한 가족이 하나의 극단과 극장에 매달리는 연극인의 삶을 사는 보기 드문 실례다.

이런 그도 1990년대 후반 극장을 운영한 지 10년을 넘겼는데도 개관할 때와 별로 변한 게 없는 데 좌절, 어느 술자리에서 ‘폭파’ 돌발 발언을 한다. 극장 문을 그냥 닫으면 아무 의미 없고, 또 극장은 자신의 집으로 한 것이니 폭파해도 손해배상 물어줄 걱정이 없다는 농담 반 진담 반이었다. 그의 이 말은 그해 한 신문의 연극계 결산 기사에 인용될 정도로 연극계의 어려운 현실을 대변해주는 말이 됐다.

한때는 ‘극장 폭파’ 발언도… “미쳤으니 적자에도 극장 계속 운영”

     

 

산울림소극장 개관 1주년 기념공연인 ‘위기의 여자’는 여성 삶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며 여성연극의 새 길을 열었다. 1986년 초연 당시 박정자, 조명남, 연운경이 출연했다.abortion pill abortion pill abortion pillabortion pill abortion pill abortion pill
산울림소극장 개관 1주년 기념공연인 ‘위기의 여자’는 여성 삶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며 여성연극의 새 길을 열었다. 1986년 초연 당시 박정자, 조명남, 연운경이 출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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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같은 미친놈이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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