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터널 / 앤서니 브라운 글·그림 | 논장 > ‘형만한 아우가 없다.’는 속담이 있다. 이 말의 뜻이 어떠하든 우리는 이런 말 속에서 형과 아우는 비교대상이며 경쟁상대임을 인정하고 있다. 형제와 남매는 상하관계이지만 부모와는 달리 한편으로는 또래관계이기도 하다. 하지만 또 친구관계와는 많이 다르다. 아무리 동생이 똑똑하고 잘났어도 위아래는 바뀌지 않는다. 맏이는 몸으로 부딪히면서 배운다. 동생은 맏이가 하는 것을 가만히 보면서 배운다. 동생은 맏이가 야단을 맞는 일은 하지 않는다. 칭찬을 받는 일은 아주 열심히 한다. 맏이는 이런 동생을 얄미워한다. 그래서 몰래, 혹은 부모가 없을 때 동생을 괴롭히고 야단친다. 동생은 형을 통해 미리 경험을 해보기 때문에 웬만한 것에는 흥미를 보이지 않는다. 정치가들 중에 맏이가 많고, 사업가나 탐험가들 중에 동생이 많은 것도 이런 이유들 때문이라고 한다. 앤서니 브라운의 ‘터널’은 남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그림책이다. 그림책에서는 글과 그림이 각각 이야기를 한다. 글과 그림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일치하거나, 전혀 다르거나,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준다. 서로 딴판인 오빠와 여동생 그림책의 글은 오빠와 여동생은 비슷한 데가 하나도 없다고 말한다. 동생의 모습에는 꽃무늬 벽지가 배경으로, 오빠의 모습에는 벽돌 담벼락이 배경으로 그려져 있다. 그림은 이들이 시간을 주로 보내는 곳이 집의 안과 밖임을 보여주고 있다. 동생은 자기 방에 틀어박혀 책을 읽거나 공상을 하며 보낸다. 오빠는 밖에 나가 친구들과 떠들고 뛰어놀면서 보낸다. 밤이면 오빠는 곤히 잠들고 동생은 말똥말똥 깨어있다. 이렇게 글은 오빠와 여동생이 서로 딴판이라고 말하고, 그림은 어떻게 다른지를 보충해서 보여준다. 글과 그림이 서로 보완적이다. 그렇지만 정말 오빠와 여동생은 다르기만 한 것일까? 그림은 글을 전적으로 지지하고 있는 듯하지만 은근슬쩍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많은 남매와 자매, 형제들이 자신들은 서로 다르며 닮은 데가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를 듣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 둘이 너무 흡사하게 생겨서 웃음이 나오게 하는 말일 뿐이다. 그림책에 나오는 오빠와 여동생의 얼굴 모습은 한판으로 찍어 놓은 판화처럼 아주 흡사하게 보인다. 괴롭히는 오빠, 귀찮게 구는 여동생 여동생은 깜깜한 밤을 너무너무 무서워한다. 여동생은 침대에 누워 잠들지 못하고 있다. 침대 옆에는 과자집 모양의 스탠드가 켜져있다. 불빛이 비추는 벽에는 빨간 망토를 입고 바구니를 들고 있는 소녀와 늑대가 이야기를 나누는 그림이 걸려있다. 옷장 측면에는 여동생의 모자 달린 빨간 코트가 걸려있다. 살짝 열린 옷장 사이로 흰색 옷의 팔 한쪽이 삐져나와 있다. 침대 밑 오른쪽에는 신발 두 짝이 바닥을 보이며 침대 속으로 기어들어가듯 놓여있다. 침대의 왼쪽 밑에는 마치 괴물의 꼬리처럼 검은 줄이 침대 안쪽으로부터 구부러져 나와 있다. 그림은 여동생이 머릿속에 무슨 생각들이 오고가는지 보여준다. 이때 열린 방문에서 늑대 그림자가 나타난다. 여동생이 얼마나 놀랐을지! 아무런 글이 없어도 저절로 ‘으악!’하는 비명이 들린다. 오빠가 여동생을 골려주려고 늑대 가면을 쓰고 기어들어온 것이다. 둘은 얼굴만 마주치면 티격태격 다툰다. 오빠는 동생을 행해 손가락질을 한다. 동생의 얼굴은 거의 울기 직전이다. 화가 난 엄마가 둘을 밖으로 내쫓는다. “나가서 사이좋게 놀다 와!” 하지만 오빠는 동생이랑 같이 놀기 싫다. 동생은 오빠를 따라간다. 오빠는 쓰레기장으로 간다. 동생은 끔찍하고 무섭다고 말하면서도 따라간다. 오빠가 겁쟁이라고 놀려도 쓰레기장 한편에 앉아 책을 본다. 아마 지금도 어딘가에서 많은 오빠와 형들은 동생을 놀리고 괴롭힐 것이다. 그리고 동생들은 누나와 언니들을 귀찮을 정도로 따라다닐 것이다. 아이들은 그림책을 보면서 ‘나만 그런 게 아니네.’ 하면서 안심을 할 것이다. 굳어버린 오빠 오빠는 터널을 발견하고 들어가자고 한다. 여동생은 마녀며 괴물을 핑계 대며 싫다고 한다. 그러자 오빠는 동생을 비웃으며 터널 속으로 들어가 버린다. 여동생이 터널 밖에서 아무리 기다려도 오빠는 나오지 않는다. 동생은 오빠를 찾아 터널 속으로 들어간다. 터널 입구에는 마치 앞으로 동화속의 일들이 일어날 것이라고 알려주듯 동생이 읽던 책이 펼쳐져 있다. 동생이 기어서 들어간 터널 반대편에 고요한 숲이 나타난다. 안데르센의 동화 ‘헨젤과 그레텔’에는 아이들이 집을 찾아 돌아오려고 뿌려놓은 빵조각을 새들이 먹어버리는 이야기가 나온다. 아이들은 이런 사실을 모른다. 하지만 그림에서 동생은 새들이 빵조각을 먹고 있는 장면을 바라본다. 그림책 속에서 또 다른 동화 이야기를 떠올리게 하지만 다른 이야기가 나올 것이라고 기대하게 만든다. 동생은 겁에 질려 바닥만 보며 걷다가 뛰기 시작한다. 나무들은 점점 비틀리고 스멀스멀 엉키면서 온갖 괴물과 동물들의 모습처럼 변해간다. 빈터가 나타나고, 뛰어가다 되돌아보며 돌로 굳어버린 오빠를 발견한다. 감정을 공유하다 동생은 울면서 차갑고 딱딱한 돌로 변한 오빠를 껴안는다. 돌은 조금씩 부드럽고 따뜻해진다. 오빠는 반갑게 동생을 부른다. “로즈! 네가 와 줄줄 알았어.” 동생은 오빠도 자기처럼 겁을 먹고 경직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오빠는 동생이 항상 읽고 있는 동화와 상상의 세계를 경험한다. 같은 경험을 하면서 둘은 감정을 공유한다. 그리고 서로가 다르면서 같다는 것, 밖에서는 항상 한편인 것을 깨닫는다. 마지막 페이지에 오빠의 공과 여동생의 책이 함께 놓여있다. 그림책이 글과 그림의 조화이듯, 오빠와 동생, 현실과 상상이 다른 듯하지만 서로 닮았다는 이야기인지? 여러분도 이 그림책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찬찬이 들어보고 답을 알게 되면 귀뜸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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