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이제 원전 없는 나라를 꿈꾼다

일본에서 대지진이 있고, 연이어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있은 지 꼭 1년입니다. 지난 1년은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아랍의 봄으로부터 월스트리트 광장의 ‘점령하라’ 시위가 세계적으로 이어졌고, 후쿠시마 사고 후 유럽의 많은 나라들이 ‘탈핵’ 선언을 차례로 해나갔습니다. 우리 사회도 희망버스와 평화비행기, 청춘콘서트, ‘나꼼수’가 큰 공감을 얻으면서 2011년의 열쇳말은 ‘각성’(awakening)이라고 언론에서 정리했을 정도입니다. 글로벌 시민사회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연대감을 느꼈고, 국민국가들의 역사와 토건국가의 정치경제로부터의 절연을 선언하는 젊은 그룹의 목소리도 커졌습니다. 인류의 역사가 큰 회오리가 치는 듯한 한 해였습니다.

지난달 저는 일본의 시가현이라는 곳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일본의 평화운동가이자 인류학자인 쓰지 신이치 선생님의 초대로 후쿠시마 사고 후 가장 변화가 크게 일어나고 있는 도시를 방문한 것입니다. 세계의 회오리 속에서도 시가현은 매우 평화로운 곳이었습니다. 꽤 성공적인 에코빌리지와 귀촌하는 젊은이들이 늘어나고 있는 시가현의 중심에는 전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호수(비와호)가 있어 140만 현민의 생명수로 대대손손 중요한 자원이 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비와호는 스스로 시민들을 단련시켜왔다고 할까요. 비와호와 비와호로부터 바다로 이어지는 강, 비와호를 둘러싼 삼림이 풍부한 산 등은 시가현의 사람들을 자치적이고, 자립적으로 단련시킨 것 같습니다. 그런데 꼭 한 번, 시가현의 사람들은 상당한 위기의식을 느낀 적이 있습니다.

30년 전 비와호가 적조현상으로 심각해졌던 것인데, 이유를 알고 보니 폐수, 폐식용유 같은 것들로 인한 오염 탓이었습니다. 이때 팔을 걷어붙인 사람들이 어머니 등 여성들로, 폐식용유로 비누를 만들면서 호수 정화를 시작한 이 여성들은 현재까지 폐식용유 사업을 정말 잘 해오고 있습니다. 비누뿐 아니라, 바이오디젤도 만들고, 재생가능 에너지와 유기농 농장 등의 사업과 교육을 체계적으로 실시해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원전이 없어도 괜찮다’는 생각은, 이 여성들에게는 후쿠시마 사고로 인한 결정이 아니었다고 했습니다. 후쿠시마 사고는 30년 전부터 꾸준히 해오던, 자연과 아이들을 걱정해 시작한 일을 좀 더 가속화시켜야 하는 계기가 되었을 뿐이며 벌써부터 지난 30년간의 경험과 기술을 바탕으로 원전에 의존하지 않는 삶의 모델을 만들어가고 있다고 담담히 얘기해 주었습니다. 전기를 절약하고, 에너지시스템을 효율화하고, 대체에너지를 개발하는 데 큰 힘을 기울이는 것, 그것은 물려받은 자연과 물려줄 자연, 그리고 그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과 모든 생명 있는 존재들에 대한 책임과 애정 때문에 하게 된 일들인 것입니다.

시가현의 여성 도지사 가다 유키코는 비와호로부터 30㎞ 근경의 원자력발전소를 걱정하며, 현재 일본 전역에는 54기의 원전이 있고 그중 51기가 가동을 중지한 상태인데 전력 공급에는 무리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방문 기간 중 시가현 근경의 원전 가동이 멈췄습니다. 이제 일본에는 동부지역 2기의 원전만이 가동 중이고, 그나마 4월이면 일본 원전 전체가 중지됩니다. 가다 지사는 “일본은 이제 핵을 졸업하자(卒核)는 운동이 벌어지고 있습니다”라고 하면서, 일본의 많은 시민들이 “원전 없는 나라, 일본”을 꿈꾸고 있다고 했습니다. 물론 원자력산업과 그 산업체와 결탁한 정부의 누군가들은 여전히 원전의 재가동을 요구하고 있지만, ‘졸핵’은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결론이라고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세계적인 민주화의 회오리가 시작됐던 2011년 3월 11일에 후쿠시마는 큰 희생을 치르면서 인류에게 경고를 전해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전 세계시민이 연대해 함께 꿈꿀 수 있게 된 새로운 민주화는 다만 현세의 인류를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정말 인류를 걱정하고 염려해야 하는 때에 있습니다. 이 민주화는 여성과 아이들의 민주화이며, 지구상의 모든 생명을 위한 민주화, 아직 존재하지 않지만 미래의 후손들 모두를 위한 민주화로, 평등하고 정의롭게 꿈꾸고 실천돼야 하는 아주 다른 민주화인 것입니다. 후쿠시마 사고 후 1년, 지난해 얻어진 ‘각성’은 2012년 ‘졸핵’ ‘탈핵’으로 향한, “아이들에게 핵 없는 세상을” 위한 공동행동으로부터 시작돼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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