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나의 시골살이 또한 첨단으로 가는 길일 수도

나는 1983년부터 인터넷, IT, 정보기술 활용분야, 인터넷 비즈니스 교육과 관련된 일을 했다. 40대 후반에는 당시 다니던 대기업을  나와 제2의 경력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인터넷이 산업의 각 분야와 개인들에 의해 활용된 1990년대가 지나가고 2000년이 되자, 인터넷 자체의 전성기는 지났다고 판단했다. ‘인터넷 전문가’로서 더 이상 대기업에서 즐겁게 일할 만한 분야가 없는 것으로 보였다. 60세 이후에도 일할 수 있는 새로운 분야의 경력을 새로 개척하기 위해 회사를 그만두었다.

20년 전 우연한 행운으로 나의 능력과 적성에 꼭 맞는 인터넷 개발자라는 직업을 가지게 되었듯, 다시 새로운 경력을 만날 것이라고 믿었다. 새 분야를 개척하기 위해 노력하던 중 2004년 ‘라이트메네지먼트코리아’라는 회사와 연결되어 ‘경력 상담자 및 강사’로 지금까지 일하고 있다.

퇴직 후 얼마간 국내외 여행을 다녔다. 어린 시절에 남쪽 바다가 있는 부산에서 자랐기 때문에 막연히 노년에는 남쪽 바닷가에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시간이 나면 여유 있는 일정으로 남해와 서해의 섬들을 찾아다녔다. 그러나 내가 살고 싶은 마을이나 땅을 찾지 못했다. 그러던 중 떠오른 농촌의 풍경이 있었다. 큰길에서 그리 멀지 않으나 찻길에서 들여다보이지 않고, 낮은 산등성이에 싸여 푸근하고 안정감 있게 자리 잡은 촌락. 점잖은 촌락 형태의 아버지의 고향마을, 상주 양촌동 터골 마을이었다.

40대 후반부터 50대 이후를 어떻게 생활할까에 대해 계획하는 나를 주변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늙는 것도 서러운데 은퇴 후의 삶을 생각하면 더 우울한데 왜 미리부터 생각하느냐는 태도가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나는 20대에 30대와 40대를 계획했듯 중년 이후의 생활을 다시 계획하고 실천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여겼다. 40대 후반에 계획한 50대 이후의 삶의 계획은 ‘아버지의 고향집’으로 돌아가 시골에서 생활하면서 글을 쓰고 강의하는 생활을 하는 것이었다. 더 구체적으로는 지금까지 축적한 ‘경력 상담’ 분야의 경험을 바탕으로 10대부터 60대까지의 고객을 대상으로 ‘경력과 인생 설계를 계획하도록 도와주는 경력개발쎈타’를 운영하며 60대 이후에도 계속 일을 하는 것이었다.

막연히 60세가 되면 아버지의 고향으로 이주하려고 생각했으나, 프리랜서의 직업을 가진 터라 한 주일에 2~3일 출근하면 되는 형편이므로 원래 계획보다 더 이른 54세에 시골로 이사했다. 이곳은 과거에는 100가구 이상 살던 마을이지만, 지금은 주로 노인들로만 구성된 50가구 미만이 살고 있다. 매우 평범한 농촌 마을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아버지 그리고 그 위의 조상들, 아버지의 친척들이 살고 있는 특별한 마을이다.

현대를 급하게 달려온 세대, 도시의 편리함을 오래 누린 세대, 그리고 세계를 다니고 서구학문의 각 분야를 거친 나, 이제 조상의 땅, 아버지의 고향, 이곳 시골에 돌아왔다. 80년도에 인터넷 기술자로 첨단을 연구했듯, 지금 나의 농촌생활 또한 첨단으로 가는 길일 수 있다고 가끔 생각한다.

내가 이곳으로 옮겨와 사는 것이 어떤 기운의 회복을 가져올까?

이 땅과 내 기운이 합하여 무엇을 만들어 낼까?

나는 늘 의문하며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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