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을 방문한 포춘지의 앤디 서워 편집장은 한 인터뷰에서 한국이 풀어야 할  문제로 북한과의 관계 설정, 부의 분배, 저출산·고령화 등과 함께, 여성 인력 활용을 지적했다고 한다. 우리나라 여성의 높은 교육 수준에 비해 터무니없이 낮은 경제활동참가율, 저학력보다 고학력 여성들에게서 더 심화되는 경력단절 현상 등은 누가 보아도 상식으로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여성지위 향상과 관련한 일을 하는 이들이 늘 경험하는 어려움은 여성문제에 관심이 없거나 무지한 이들에게 성차별 현실과 성평등 가치의 중요성을 설명하는 일이다. 그들은 신임 검사 45명 중 여성이 32명이나 된다는 사실을 들먹이면서 여성문제는 다 해결되었다고 한다. 일부 분야에서 일부 연령대의 여성이 약진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여전히 사회 곳곳에 여성에 대한 편견과 차별의 요소가 지뢰처럼 깔려 있다. 여성 차별적 현실과 성차별의 사회·경제적 비용을 보다 효과적으로 입증하는 데 빅데이터의 활용이 도움이 될 것이다.

미국의 시장조사기관인 가트너가 ‘데이터는 미래 경쟁력을 좌우하는 21세기 원유’라고 했을 정도로 데이터는 가장 중요한 자산으로 간주된다. 데이터를 잘 관리해 이로부터 가치를 창출하지 않는 기업은 경쟁에서 도태된다고 한다. 바야흐로 빅데이터 시대다. 

빅데이터는 엄청난 분량(volumn), 다양한 형태(variety), 빠른 생성속도와 처리능력(velocity), 무한한 가치(value) 등 네 가지의 특징을 지닌다고 하여 4V로 불리기도 한다. 인터넷과 각종 저장매체의 발달로 종전에는 수집, 저장, 검색, 분석하기 어렵던 방대하고 복잡한 데이터를 보다 효율적으로 다룰 수 있게 되었다. 빅데이터를 잘 활용하면 사회현상의 변화에 대한 새롭고 보다 논리적인 설명과 예측이 가능하다. 빅데이터가 사고하고 결정을 내리는 새로운 접근 방식이 된 것이다.

이제까지 기업들이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소비자의 행동 패턴을 분석하여 마케팅 전략에 반영하는 등 빅데이터에 관심을 보인 부문은 민간이었다. 외국의 한 기업은 여성의 이직이 초래하는 비용을 산출한 후, 모든 직원에게 성인지 교육을 실시하고 제도와 문화를 성평등하게 바꾸는 조치를 취한 결과 연간 수백억의 비용을 절감했다고 한다. 여성 인재의 유출이 심각하지만 그 비용을 정확하게 파악하거나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국내 기업들이 참고할만한 빅데이터 활용 사례다.

아직 국내 여성계에서는 빅데이터에 무관심하다. 우리나라에서는 80년대 중반부터 여성통계연보를 발간하기 시작했고, 이제 여성백서, 성인지통계 등이 친숙한 개념이 되었다. 그러나 여성 관련 통계는 늘 부족하고, 있다 해도 현행화되지 않아 쓸모없는 경우가 많다. 과연 우리는 여성·성 불평등과 관련해 충분한 양과 다양한 형태의 데이터를 충분히 빠른 속도로 생산하고 유통하고 있는가. 여성과 관련해 생산되는 각종 데이터를 실시간 또는 일정 주기에 맞춰 효과적으로 분석하고 처리하여 성평등 가치를 창출하는 데 기여하고 있는가.

여성정책 개발에 빅데이터의 활용이 필요하다. 일례로 광역에서 기초자치단체까지 수십 배 차이가 나는 출산장려금을 지급하고 있는데, 빅데이터의 활용으로 출산율에 영향을 미치는 복합적인 요인을 찾아내는 시도가 우선돼야 한다. 이에, ‘여성-빅데이터 포럼’을 제안한다. 민·관을 아우르는 이 포럼에서는 여성 관련 데이터 생산을 종합적으로 분석하고, 미싱 데이터는 대학, 기업, 통신사 등이 보유한 엄청난 데이터에서 찾아내어 공유하는 방안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빅데이터를 활용해 여성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마련하고, 이와 관련한 여성부문 빅데이터 과학자의 양성 방안도 고민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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