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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순/경북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21C미디어운동센터 공동위원

이미 천문학적 액수의 온갖 부정과 비리 뉴스에 익숙해진 우리지만

아직도 모자란다는 듯이 숨을 가누기 어려울 정도로 어지러운 ‘악

성 뉴스’의 파도가 연속 우리를 강타 하고, 정권의 위기까지 논의

될 정도이다. 그러나 이러한 뉴스들 중 특별히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최근의 신동아그룹 회장부인의 ‘옷로비’ 의혹사건이다. 정확

히 말하자면, 이 사건에 대한 언론의 집중보도와 그 내용이다. 이 사

건에 대한 언론의 보도는 우리 사회의 ‘금기’가 무엇인지 확실히

알게 만들어 주었을 뿐만 아니라 상업주의 언론의 속성을 확실히 드

러내 주었기 때문이다.

옷로비 의혹 사건은 사실 최순영 신동아 그룹 회장이 외화 밀반출

사건과 재산해외도피 사건에 대한 수사과정에서, 최회장의 구속을

피하기 위한 전방위 로비 속에서 불거져 나온 일이다. 따라서 이 사

건은 이제까지 우리가 보아왔던 권력과 관련된 수많은 부패 비리 스

캔들과 그 본질에 있어 굳이 다를 것도 없는 그렇고 그런 사건의 일

부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론은 이 사건의 본체인 최회장의 외화도피나

재산 밀반출 의혹에 대한 뉴스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엄청난 지면

할애로 이 사건을 집중 부각시켰고, 그 내용은 한국언론이 ‘여성

혐오증’을 갖고 있는 것이나 아닌지 의심이 갈 정도로 사건의 본말

을 전도시켜 놓았다. 언론은 일제히 “봉사모임 새끼쳐 옷집 순례”

(한겨레, 5월 31일)와 같은 기사제목 처럼, 여성들의 ‘고급옷 때리

기’와 고위층 사모님들의 ‘봉사활동 때리기’에 열중하였다.

유사 권력형 비리스캔들 압도하는 과잉반응, 언론의 여성혐오증 자

이 사건이 어떻게 해서 그렇게 집중 조명될 만큼 엄청난 뉴스가치

를 갖게 됐을까? 사과상자에 담긴 수천억원의 비리를 이미 신물나게

학습한 우리들에게 기껏 비싸야 2-3천만원에 불과한(?) 밍크 옷에

왜 새삼 분노하라고 성화인지 그 이유는 다른 것에 있지 않다. 무엇

보다도 그 이유는 이제까지의 다른 부패, 비리 스캔들과는 달리 이

사건의 주연들이 여성이라는 점에 놓여 있다. 이 사건에 대한 언론

의 반응은 남성 전용화장실에 여성이 들어갔다면 생길 수 있는 소란

법석인 셈이다. 이 소란 법석에 한국사회의 금기와 우리 언론의 속

성이 압축되어 있다.

한국에서 권력과 정치는 남성의 세계를 의미한다. 이제까지의 비리

나 부패사건의 주역이 남성들인 것이 그 씁쓸한 증거이다. 법무장관

부인이나 재벌회장 부인은 남편의 사회적 지위로 인해서 본의 아니

게 여성출입 금지의 금기를 범한 셈이다.

고관부인들의 사회 봉사활동은 이번 로비사건의 연결고리로서 그런

금기를 깰 가능성때문에 언론의 집중 분석과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경향신문의 '뉴스 메이커'는 커버 스토리로 “사모님 정치, 나라

말아 먹는다”(6월 10일)라고 까지 비난하고 나섰다. “여성, 봉사,

권력, 로비, 뇌물... 이번 고위공직자부인 옷뇌물 사건의 핵심으로 거

론되는 것들이다...”라고 말하는 이 기사의 서두는 이 사건에 대한

전체 한국 언론의 보도내용을 그대로 대변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

니다. 그리고 한술 더 떠, 이 사건과는 관계도 없는 대통령 부인의

봉사단체마저 비리 커넥션이 있는 양 ‘추적 폭로’라는 센세이셔널

한 표제와 더불은 표지 사진과 “이희호 여사 주도 봉사단체, 이형

자 정일순씨 후원했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위에서부터 아래

까지 ‘모든 사모님들’의 혹 있을지도 모를 금기 위반을 경고하듯

곱지 않은 시각으로 보도하고 있다.

권력·정치의 ‘남성세계’에 발들여놓은 여성들에 대한 정죄

이것은 차를 모는 여성운전자에게, “집에 가서 밥이나 할 것이지

왜 복잡한 거리에 할 일없이 차는 끌고 다니는 거야”라는 남성 운

전자의 무차별적 폭언이 담고 있는 편견적 일반화와 하나도 다를 바

가 없다. 언론은, 왜 이처럼 철저하게 모든 여성을 의심의 눈으로 바

라보고, 남성의 그것과는 달리 여성의 일탈행동은 전체 여성의 것으

로 일반화시키는가 생각해 볼 문제이다. 한국 사회의 금기와 성역이

깨질 것에 대한 남성들의 두려움이 그 동인이라면 지나친 비약일까?

대통령부인 주도 봉사단체까지 들먹이며 사건 본질 호도

지금과 같은 경제 상황에서 고위층 사모님들의 고급옷 쇼핑과 사교

모임에 대한 비판이나 비난은 겉으로 볼 땐 귀담아 들어야될 지당한

말씀이다. 그러나 보자. 우리 사회의 온갖 것들이 여성의 사회진출을

방해하는 현실에서 여성들, 특히 결혼한 여성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고위층 사모님들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이런 사회구

조에서 여성의 사회봉사가 로비와 뇌물의 필연 조건인 양 말한다는

것은 정말로 부도덕한 언론의 현실 왜곡이다. 그 어느 누구도 이제

까지 드러난 천문학적 액수의 권력형 비리와 부패를 보고서 “남성

정치가 나라 말아 먹는다”는 식으로 함부로 말하지는 않기 때문이

다.

“암탉이 울면 나라가 망한다”는 식의 논조로 여성의 사회활동을

부정적으로 묘사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개혁을 선도해야할 장

관의 부인이 옷바람이나 일으키고 다녔으니...”(한겨레, 6월 11일)라

고 호통치는 논조 속의 모순은, ‘내 대신 뒤에서, 나의 출세를 위해

열심히 내조’하길 바라는 남성세계의 위선을 함께 갖고 있다. “여

성, 봉사, 권력, 로비, 뇌물...”이라는 일련의 언어는 남성전용의 권

력 세계가 만들어 내는 모순구조 속의 ‘희생양 탓하기’에 다름 아

니다.

이러한 와중에서 언론은 또한 독자를 위한 본능적 감각도 발휘한

다. 여성, 봉사, 권력, 로비, 비리를 연결하는 것은 옷이 아닌가? 이

번 기회에 사건과 관련 없는 시시콜콜한 사생활을 비롯해서 상류사

회에 대한 대중의 호기심도 충족시키자는 것이다. 그것은 라스포사,

페라가모, 나나 부티크, 앙드레 김과 같은 강남의 고급 옷값과 의상

실 순례를 통한 교육(?)으로 나타난다. “정권따라 부침 하는 의상

실”, “상류층이 애용하는 의상실”, “영부인 패션”, “상류층 부

인들, 고급의상실 미용실이 사랑방”, “패션 상표 무슨 뜻일까”,

“고급 옷집들, 고관부인에 왜 특별할인 해줄까?...”와 같은 제목들

의 기사는 무엇 때문에 여기에 보도돼야 하는가?

상류사회 향한 대중호기심 충족시키는 ‘서비스’ 제공하며 상업성

노골화

여기서 “지도층의 부패와 부도덕성에 국민적 비애가 느껴진다”는

언론의 비장한 논조와 이와 같은 기사들이 보여주는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은 묘한 대조를 이룬다. 이것은 최순영 회장의 재산 밀반출

비리를 개탄하면서 동시에 비리 당사자의 구명을 위한 알듯 말듯한

단체의 전단광고(‘김대중 대통령께 드리는 탄원서’, 5월 15일 일

간지들)를 게재하는 상업주의 언론의 어쩔 수 없는 모순이다.

김강용 고관집 절도사건의 경우나 이번의 ‘재벌’부인 로비의혹

사건의 경우에서 나타나듯이 상업주의 언론은 범법자와 불법 행위자

의 말을 피해자의 말보다 더 비중있게 보도한다. 고관들보다는 절도

범의 말을, 장관부인보다는 재벌부인의 말을 더 크게 보도한다. 대중

의 정서에 맞기 때문이다. 강도 사건에서 강도의 변을 보도해 주는

것과 다를 바 없지만 우리는 범법 피의자의 말을 더 믿고, 피해자는

오히려 대중의 지탄대상으로서 불신당한다. 상업주의 언론 보도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은 절도 용의자, 로비를 한 재벌 부인, 로비

대상이 된 장관 부인 중 도둑의 말을 제일 믿고 싶게 만든다.

IMF로 찌든 서민 욕구불만 해소에 왜 여성이 악역으로 부각되나

이번 사건은 IMF로 찌든 서민생활의 욕구 불만이 표출될 수 있었

던 좋은 뉴스 소재였다. 언론은 이를 본능적으로 간파했다. 언론의

고급옷 때리기와 봉사활동 때리기는 바로 IMF시대 서민의 욕구불만

해소를 위한 감성적 마사지인 것이다. 언론은 이 사건을 소재로

“누군가와 한바탕 싸우고 싶은 허탈감과 박탈감”을 생산해 내고,

돈없고 힘없는 서민들은 이것을 소비했다. 결국 허탈과 박탈감의 생

산과 소비과정에서 언론이 한 일은 사회 모순에 대한 서민 대중의

분노를 잠재우고 역설적으로 이러한 모순들이 영속하게끔 만드는 것

이다.

내친 김에 한마디만 더 하자. 정치나 권력의 세계에 관한 한, 언론

은 평소 여성의 공간이 아니다. 언론은 여성이 상징적으로 소멸된

남성의 공간이다. 여성은 악성 뉴스 속에서만 부각되고 각인 된다.

기사 속의 상징적 공간 속에서조차 여자들의 참여 공간은 의상실과

봉사회였음에 주목하라... 악성 뉴스는 여성과 같은 소외집단이 의외

로 손쉽게 언론의 조명을 받는 계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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