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결될 문제는 걱정할 필요 없고, 해결 안 될 문제라면 걱정을 마라”
비폭력 운동으로 세계의 영적 지도자 된 달라이 라마를 만나다

 

연말연시가 지나는 동안 감기로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 나는 짜증이 가시지 않은 상태로 다가오는 일을 미룬 채 비몽사몽 잠에 취해 있었다. 그러다가 꿈결에 달라이 라마의 미소를 언뜻 보았다. 생뚱맞게 웬 달라이 라마? 스스로도 놀라웠던 꿈을 되새기다가 명상여행기를 써야 한다는 생각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이유야 어찌됐든 잔상으로 남아 있던 달라이 라마의 꿈 덕분에 오랜만에 자리를 털고 일어나 산책을 나갔다. 밖은 봄날처럼 환했다. 산책길로 들어서니 기분은 한결 상쾌해졌고 자연스럽게 지난 여름 만난 달라이 라마의 미소를 떠올리며 내 생각은 맥그로드 간즈에서 보냈던 인상적인 하루에 머물게 됐다. 

달라이 라마가 50일간의 무문관을 마치고 왕궁으로 돌아온 그날은 유별난 하루였다. 내가 맥그로드 간즈에 도착한 후 열흘이 지나는 동안 단 하루도 한나절 이상 날씨가 맑아본 적이 없었는데, 그 전날 저녁 나절부터 안개가 걷히기 시작하더니 히말라야 설산이 환하게 빛나고, 하늘에는 새벽까지 보름달이 떠 있었다. 오랜만에 빛을 머금은 산 능선이 부풀어 오르면서 찬란하게 하루가 열리자 산 넘고 내를 건너 남걀 곰파(사원) 앞으로 구름떼처럼 몰려든 사람들은, 출타했다 귀가하는 아버지를 기다리는 어린아이들처럼 들떠 있었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하루 사이에 바뀐 날씨와 사람들의 표정을 보면서 나는 달라이 라마의 소년 시절을 엿볼 수 있는 영화 ‘티베트에서의 7년’의 한 장면을 떠올렸다. 음악을 좋아하고 영화를 좋아했던 감수성 예민한 소년 달라이 라마는 국권을 빼앗긴 불운한 나라의 국왕이 되는 즉위식이 거행되기 하루 전, 홀로 숨어서 오르골에서 흐르던 드뷔시의 월광 소나타를 듣고 있었다. 아버지 같은 친구 하러씨는 사라진 어린 국왕을 애타게 찾다가 그를 발견하자마자 신변의 위험을 걱정하며 티베트 땅을 떠날 것을 간곡하게 권유한다. 

그러나 잠시 속세를 잊고 싶었다고 말한 어린 국왕은 표정을 바꿔서 단호하고 의지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해결될 문제라면 걱정할 필요가 없고, 해결 안 될 문제라면 걱정을 말라는 티베트 속담이 있습니다. 내가 이곳을 떠나면 국민은 누구를 의지합니까?” 그러고는 아들을 그리워하는 하러씨를 위로하며 고향 오스트리아로 돌아갈 것을 권하며 절체절명의 고독한 현실을 의연하게 맞이한다. 그 장면은 정말 감동적이었다. 아무리 영화라지만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이니 허구일리는 없을 터, 불과 열다섯의 소년이 풍전등화 같은 현실 앞에서 의연한 태도로 맞설 수 있게 했던 그 힘은 무엇이었을까?

달라이 라마가 도착하기 이틀 전 우리는 용수의 ‘중론’을 전공한 티베트대학의 노학자 스님과 면담하게 됐다. 철학과 교수이면서 불교 신자인 친구의 질문을 중심으로 티베트 불교의 특성에 대한 문답이 진지하게 오가던 중, 학자에게 하기엔 좀 생뚱맞아 보이는 질문을 불쑥 던졌다. “스님께서는 달라이 라마를 관세음보살의 화신이라고 믿습니까?” “그렇습니다. 제 업이 두터워 존자님의 모습에서 관세음보살의 현현을 직접 뵌 적은 없습니다. 그러나 존자님은 저에게 어버이 같은 분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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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은 대답 후 통역자에게 질문을 던지면서 이야기를 이어갔다. “당신은 7년 동안 존자님을 가까이서 보셨다고 했는데 달라이 라마를 아시겠습니까? 저는 그분 곁에 머문 지가 15년이 됐지만, 아직도 그분을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나에게 한 가지 소원이 있다면 다음 생에도 그 다음 생에도 또 그 다음 생에도 열심히 공부하여 그분 곁에 태어나는 겁니다. 달라이 라마는 어버이 같은 존재라서 그분 앞에 서면 저는 어린아이처럼 행복해집니다.” 달라이 라마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자 두 손을 모으고 미소가 번지던 스님을 보면서 나는 정말 놀라웠다. 아~ 나는 머리 이전에 가슴으로 사람 자체를 온전하게 믿고 따른 적이 과연 있었던가? 정말 부러웠다. 무지렁이 할머니부터 노학자에 이르기까지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티베트 사람들의 달라이 라마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는 도대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그날 저녁 나는 저녁 기도를 하기 위해 호텔을 나서는 친구를 따라 사원으로 올라갔다. 친구가 기도를 하는 동안 오체투지를 하는 사람들을 멀뚱멀뚱 바라보던 나에게 옆에 계시던 할머니께서 방석과 밀대를 건네주며 미소를 지으셨다. 엉겁결에 할머니를 따라서 오체투지를 시작했다. 옴마니반메훔(부처님은 내 마음에 있다) 옴마니반메훔~ 어색하던 주문이 익숙해지면서 성호를 긋듯 온몸을 스크린하며 땅에 몸을 눕혔다 일어서기를 반복했다. 마주보이는 부처님의 눈빛이 허공 속에 머물러 있고 코라를 도는 사람들의 모습이 은하수처럼 흘렀다. 

주님! 당신의 이름이 부처의 이름과 다르지 않고 궁극에는 그것이 내 존재의 이름이라는 것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부디 이 자유의 기쁨이 마음 덫에 걸려 넘어지지 않도록 은총을 베풀어 주소서! 그레고리안 성가 소리의 향기를 닮은 종소리에 맞춰서 주님께 기도를 하고 오체투지를 끝낸 나는 내친김에 코라를 돌기 시작했다. 마니차를 돌리는 사람들, 주문을 외면서 빠른 걸음으로 걷는 사람들, 지팡이에 의지하면서 천천히 도는 할아버지, 할머니 뒤를 따라 걸으면서 나는 빛바랜 사진첩의 희미한 영상이 살아나듯 오래전에 잊혀졌던 고향 사람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사원뿐 아니라 시장에서든 골목에서든 눈이 마주치면 미소를 짓던 티베트 사람들이 유난히 친밀감이 느껴졌던 것은 그들의 모습이 영락없는 내 고향 사람들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이역만리 타국 땅에서 40여 년 전 충청도 시골인 나의 고향 사람들의 순박한 표정과 따스한 기운을 느끼고, 돌아가신 엄마가 그리워질 줄 어찌 상상이나 했겠는가. 시공간을 넘나들며 하나로 이어주는 이 기운의 실체는 도대체  무엇일까.  

왕궁에 도착하고 이틀 후 달라이 라마는 한국인을 위한 특별 법회를 열었다. 법회에 참석하기 위해 몰려온 한국 사람들부터 티베트 사람들 그리고 세계 각처에서 온 외국인들로 남걀사원의 법당은 물론 마당까지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 달라이 라마의 법문이 시작됐다. 연기설을 바탕으로 이뤄진 법문의 내용이 그렇게 특별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마당에서 모니터를 바라보던 사람들이나 법당에서 경청하던 사람들이나 카메라 파인더에 잡힌 사람들의 표정은 감동에 젖어 있는 것이 역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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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문이 끝난 후 만난 친구도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나를 위한 법문이었어.” 뭐라고? 누구보다도 까칠한 철학과 교수의 입에서 불쑥 튀어나온 말이 자기를 위한 법문이었다니! 달라이 라마의 말씀은 지식이 아니라 기운으로 살아서 사람들의 마음속으로 스며들어간 것일까? 그러지 않고서야 어찌 같은 내용의 법문이 각양각색의 사람들 모두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가 말이다. “미세마음에 대한 법문을 하실 때 존자님은 나를 향해서 미소를 지으시며 속삭이듯 말씀하셨었지.” 나에게도 특별한 시간이었음을 친구에게 이야기하는데 옆에서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던 스님께서 빙그레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두 분만 그런 것이 아니라 여기에 모인 보살님들 대부분이 존자님이 자신에게 말씀하셨다고 생각한답니다. 달라이 라마님의 위력이지요.” 

“네? 그렇다면 그게 바로 관세음보살의 천수천안(千手千眼)인가요?” “하하하, 보살님께서 그리 생각하시면 그런 게지요.” 매년 한국인을 위한 달라이 라마의 법회를 주관하신 스님의 말씀을 듣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법당에 조각돼 있던 ‘천수천안 관세음보살상’의 낯선 이미지가 가슴에 와 닿았다. 그러면서 그때 문득 ‘달라이 라마는 진짜 관세음보살의 현현이실까?’라는 생각이 잠시 스쳤었다. 그런데 서울에 돌아와서 달라이 라마에 관한 자료를 이것저것 접하던 중 우연찮게 그때 들었던 의문에 대한 답을 달라이 라마께서 직접 하신 것 같은 글을 읽게 됐다. 

“만약에 민중들과 나를 연결해주는 유일한 끈이 달라이 라마라는 지위 때문이었다면, 나라를 잃었을 때 민중들과 내가 이어지긴 매우 어려웠을 것입니다. 민중들과 나를 이어주는 끈은 나 역시 한 사람의 인간이라는 사실입니다. 모든 걸 잃는다 해도 인간으로서의 연대감을 잃지 않는다면, 인간은 위안을 받을 수 있습니다.” 

망명자의 삶을 살아가는 티베트 민중들이 기대고 의지하는 어버이가 되고, 종교를 초월해 지구촌 사람들에게 전달되는 행복의 원동력은 바로 인간의 연대감에 대한 믿음에서 피어난 미소와 무차별적인 사랑의 기운이었던 것이다. “진정한 지하드(성전)란 다른 사람을 때리거나 죽이는 게 아니라 우리의 부정적인 감정과 싸우는 일”이라고 말하며 간디에 이어 비폭력 운동을 실천하는 달라이 라마는 이제 티베트만이 아닌 세계의 영적 지도자가 됐다. 진리의 기운이 온몸에서 방사돼 주변의 빛이 되는 사람을 성인(聖人)이라고 한다면, 티베트의 14대 달라이 라마 텐진 갸초(지혜의 바다)! 그는 정말 멋진 인간, 성인(聖人)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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