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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족성폭력 공론화 계기가 된 김보은 의부살해사건에 쏠린

여성들의 관심과 애정은 뜨거웠다.

“이 아빠보다 너를 더 사랑한다” “처녀막이 있는지 아빠가 알아

봐야 겠다” “너는 내가 만들었으니까 내 애인이야”

이른바 가족 안에서 일어나는 ‘친족성폭력’. 의부에 지속 성폭행

을 당하다가 결국 애인으로 하여금 의부를 살해케 한 김보은 사건이

물꼬가 돼 꼭꼭 숨겨두었던 근친강간의 실상이 드러나기 시작했지

만, 그에 대한 인식과 안전망은 거의 전무한 것이 현실이다.

지난 9월 14일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 성폭력피해자 쉼터 ‘열림

터’ 개소 5주년 기념세미나에선 상식적으로 생각하기엔 너무나 충

격적인 사례들이 처음 공개됐고, 이에 따른 지원체계의 필요성이 대

두됐다. 그간 열림터 이용자들의 성폭력 피해유형을 분석한 결과, 친

부에 의한 성폭력이 총54건으로 전체 피해 건수의 절반에 가까운

45%를 차지하고 있다(강간 35건, 강간미수 4건, 성추행 15건). 이 수

치는 중복피해 경우를 빼면, 전체 85명 피해자 중 54명이라는 얘기

여서 무려 64%의 친부 성폭력을 기록하게 된다. 여기에다가 의부,

오빠, 기타 친인척에 의한 성폭력을 합하면 열림터 이용자 대부분이

친족성폭력의 희생양임을 알 수 있다. 특히 이들 중엔 임신 7개월이

지나 인공유산을 할 수 없어 친부와 오빠의 아이를 낳아 해외입양시

키고 격심한 후유증에 시달린 2명의 여중생까지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친족, 특히 친부 성폭력이 일어나는가.

97년부터 열림터 시설장으로 일해온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소

장은 한마디로 “자기 딸에 대한 인권의식이 전무하고 오히려 소유

욕이 비정상적으로 강하기 때문”이라며 친부 성폭력은 사회적으로

매우 주목해야 할 부분이라고 강조한다. 그가 발표한 ‘열림터 운영

현황과 과제’에 따르면, 가해자인 친부 대부분은 일용고용직이나

노동자 등 사회 경제적으로 하위층인 경우가 많다. 그러나 만약 친

부 성폭력이 사회적 지위가 높은 계층에서 일어났다면, 열림터까지

오지 않고 가족 내에서 해결했을 가능성이 있기에 꼭 그렇다고 단정

할 수는 없다. 또 입소 나이는 대부분 19세 이하인데, 최초 피해 나

이는 13세까지가 단연 많다. 결국 13세 이전까지의 근친 성폭력의

경우 가족 내 지지기반 존재 여부가 성폭력을 중지시키느냐 아니면

지속시키느냐를 결정하게 된다. 따라서 피해자의 가족관계가 중요해

지고, 그중에서도 어머니와의 관계가 핵이 된다. 그러나 놀랍게도 대

부분의 경우 어머니는 근친 성폭력의 방패역할을 제대로 못해내고

있다.

친부 성폭력 피해자 54명의 가족관계를 분석하면, 어머니가 있는

경우 친부 성폭력이 일어난 경우가 32명에 달한다. 그중 강간의 경

우 단 3명만 새어머니일 경우였고, 16명은 친어머니가 있는데도 불

구하고 강간을 당했다. 이때 어머니들은 적극적으로 딸의 성폭력을

저지시키기보다 그 사실을 믿지 않으려 한다거나 오히려 딸을 비난

하는 반응을 보인다. 때론 딸을 보호하기 위해 이혼 결단이 필요한

데도 너무나 오랫동안 가정폭력에 시달려 무력화되고 사회 경제적으

로 의존적이기에 여의치못할 경우도 많다. 따라서 장철우 변호사는

개소5주년 기념세미나에서 “어머니가 남편에 의해 자녀들이 성폭행

당하는 걸 알면서도 수사관서 신고를 비롯한 기타 피해를 방지할 조

처를 취하지 않는 것은 중대한 의무 위반이다. 현행 성폭력특별법은

어머니에 대한 신고의무를 규정하지 않음은 물론 적절한 조치를 취

하지 않은 어머니에 대해 어떠한 처벌조항도 두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한 입법운동도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열림터 내담자들이 자신을 강간한 친부들을 고소한 경우 대부분 1

심에서 7-10년이 선고되고 2심에 가선 5년 정도 형량이 낮아진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내담자들은 친부에 대한 분노와 함께 연민의 감

정에 시달리는 극심한 혼란 속에서 ‘친아버지를 고소해 가족 치부

를 드러낸 나쁜 아이’로 백안시 돼 재판 도중 피해사실을 부인하는

경우까지 발생한다. 또 친부 성추행의 경우 다른 성추행에 비해 형

량이 다소 높게 나오는데, 이는 피해자의 단독고소보다는 다른 자매

들의 강간도 함께 연결된 것으로 추측된다. 가령, 딸 A의 성추행 고

소 경우, 친부가 언니 4명을 강간해 10년 징역을 선고받았고, 아들

B의 성추행 고소 경우, 딸 2명을 강간한 것을 참작해 3년 징역을 언

도받았다. 반면, 친부 성추행이 다른 성폭력과 연결되지 않을 경우

주로 집행유예 판결이 나고 있기도 하다.

최근 김현식 산부인과전문의를 중심으로 50여 명의 의사들이 모여

발족한 ‘SS네트워크’는 성폭력 피해자들 치료를 목적으로 결성됐

다. 이들 회원들은 주로 사이버상담을 통해 피해자들을 치료하는데,

특기할만한 것은 산부인과, 가정의학과 전문의들은 물론 10여 명의

신경정신과전문의들도 함께 활동한다는 것. 회원 인 백인미 가정의

학전문의는 “산부인과 진단서에 신경정신과 진단서가 첨부되면 성

폭력 피해자의 피해가 훨씬 높게 평가돼 치료과정에서뿐만 아니라

재판에서 피해자 중심의 판결을 얻어내는데 유리하다”고 말한다.

이미경 열림터 시설장은 그간 축적된 노하우를 통해 친족 성폭력

피해자를 위해 ▲집단상담 활성화 ▲1인당 1년 3만원 정도의 의료비

지원에서 최소 15만원 이상으로 지원 확대 ▲지정 전문병원 활성화

▲보호기간 동안의 잦은 전학 방지를 위한 가전학 형식 도입 ▲학교

교사와의 긴밀한 연계망 구축 등을 제안하고 있다. 특히 제도적 측

면에선 전문적 성폭력피해자 보호시설 설치를 강조한다. 그에 따르

면, 전국적으로 보호시설은 열림터를 포함해 총 6개소가 있는데, 열

림터를 제외한 나머지 시설에선 가정폭력 피해자와 성폭력 피해자를

함께 입소시키고 있는 것이 문제다. 각 시·도별로 성폭력피해자 전

문 보호시설이 최소 1개씩은 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가장 근본적인 대책은 “지 아버지한테 당했으니 평생 그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할거야”란 사회편견을 고쳐가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친족 성폭력을 가족의 치부라고 쉬쉬하기보다 사회문제로 공

론화시키면서 법 제도상의 지원책을 모색하는 작업이 절실하다.

'박이 은경 기자 pleun@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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