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로/Ssandel@chollian.net

“너는 참 복도 많다. 무농약에 안전하고 맛난 콩나물콩을 손수 농사지어 주시는

시어머님이 얼마나 고마우시냐?”

같은 노인 처지라고 언제나 시어머님 편만 드시는 친정어머님이 혀까지 차며 콩

나물 시루에 물을 주신다. 늘 모든 면이 시원찮아 안스러운 딸집에 모처럼 오신

친정엄마 말씀인데 나는 체통을 잃고 툭 내뱉고 만다.

“아이구 엄마, 하나도 안 좋으네요. 콩나물까지 챙겨 키우려면 그게 얼마나 스트

레슨데. 외출하면서 물주고 돌아오자마자 물주고 자기 전에 물주고, 일어나자마자

물주고. 그렇게 키워 놔봐. 껍질이 잘 안 벗겨지는 게 왜 그렇게 많은지, 썩은 것,

잔발 난 것 손질하구, 요리 시간이 세 배도 더 들어요. 그냥 사다가 잘 손질된 것

두어 번 휙 씻으면 간단할 걸...”

여성이 해방되는 것, 페미니즘이 참 복잡하게 되어간다. 여자들의 손목, 발목을

붙잡아 매던 의식주를 위한 일들을 덜어내고 줄이고 없애 가는 게 해방의 중요한

관건인 줄 알던 우리들. 또 자본주의의 상혼과 상품화 원리가 여자들 편에 서기

라도 한 듯 편리한 가전제품, 포장된 가공 식료품들을 우리 앞에 무한대로 쏟아

부어 왔는데, 편리나 인공과 적대적 관계일 수밖에 없는 자연이 보복처럼 우리

앞에 다가섰다. 그래서 억눌리고 짓밟힌 여성도 해방시켜야 하지만 사람들의 행

복과 편리와 이기 때문에 천문학적으로 짓밟혀 이제 본성조차 잃어가는 자연도

존중해야 하기 때문에 페미니즘은 에코 페미니즘으로 발전되어야만 하게 되었다.

더구나 사람 중에서도 우리 여성은 자식을 낳는, 자연 자체를 재생산하는 가장

자연적인 기능을 가진 존재 아닌가? 평화만큼이나 자연, 환경도 친여성적이고 여

성이 편들고 도와줘야 하는 이슈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에코 페미니즘이라는 산술적 양자(?) 해방이 만만칠 않다. 전업주부든

취업주부든 모두 바쁘다. 시간 여유가 생긴다면 더 나은 일을 할 권리가 있고 자

신과 사회를 위해 해야 할 활동이 쌓여 있다. 파는 콩나물이 성장촉진제나 농약

으로 오염되어 있어 안전하지 않고 역시 농약으로 범벅이 된 수입콩을 원료로 한

다면 그런 해로운 콩나물이 시장에 나올 수 없도록 콩나물 공장과 식품업 관련

법규 등에 대한 검사 관리를 철저히 해야 할 것이다. 내 집에서 내 콩나물에 물

줄 힘으로 이 사회에 유통되는 잘못된 식품들을 벌주고 내쫓는 일을 하는 것이

제대로 된 방향이다.

집집마다 콩나무 시루에 물을 주느라 법석을 떠는 것은 실업문제가 새 기계 탓

이라고 기계를 때려부수던 러다이트 운동기의 영국 노동자들 꼴이 아닌가?

(‘박형옥의 음식남녀’ 칼럼관련 제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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