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분쟁 급증…땅에 떨어진 의료윤리
규제 풀린 의료광고·성형 조장 방송도 문제
실태조사 통해 법·제도 보완하고 규제 강화해야

 

서울 강남의 한 지하철역에 즐비한 성형외과 광고. 2012년 의료광고 규제가 풀리면서 성형외과 광고는 수술 전후 사진을 대비하는 등 더욱 노골적으로 변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서울 강남의 한 지하철역에 즐비한 성형외과 광고. 2012년 의료광고 규제가 풀리면서 성형외과 광고는 수술 전후 사진을 대비하는 등 더욱 노골적으로 변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최근 서울 강남 성형외과 병·의원에서 의료사고가 끊이지 않고, 수술 사진 공개 등의 문제가 발생하자 성형산업을 더 이상 이대로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들끓고 있다. 사회에 만연한 외모지상주의는 물론, 환자를 돈벌이 수단으로 보는 의료진의 윤리의식 부재와 정부 정책이 이를 더 부추긴다는 지적도 잇따른다. 

서울 지하철 3호선 압구정역은 벽마다 성형외과 광고로 빼곡하다. 이곳뿐만이 아니다. 성형외과들이 밀집돼 있는 ‘성형 메카’ 강남역에는 벽과 기둥마다 성형외과 광고로 도배돼 있다. 2012년 의료광고 규제가 풀리면서 광고는 더욱 노골적으로 바뀌었다. 성형수술 전후 사진을 대비해 보여주며 ‘당신도 이렇게 될 수 있다’고 유혹한다. 광고만 보면 성형수술이 마치 화장이나 시술처럼 간단한 것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실제 성형수술은 그리 간단치 않다. 최근에는 의료분쟁도 끊이지 않는다.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 따르면 2012년 444건이던 성형외과 의료분쟁 상담 건수는 2013년 731건으로 64.6%나 늘었다. 한국소비자원이 발표한 ‘성형수술 피해 구제 접수 현황’에서도 성형수술로 인한 피해 구제 접수는 2010년 71건에서 2013년 110건으로 증가했다. 

목숨을 잃는 의료사고도 발생한다. 실제 지난해 12월 서울 강남의 한 A성형외과에서 안면윤곽(양악) 수술을 받은 대학생 정모(21)씨가 숨졌다. 정씨는 4시간에 걸친 수술을 마치고 회복실로 옮겨진 뒤 마취에서 깨어나지 못했다. 사고가 난 성형외과 병원은 법무부로부터 ‘의료관광 우수 유치기관’으로 선정되기도 한 대형 병원이다. 최근 수술 사진 공개와 수술 중 생일파티로 논란을 빚은 B성형외과 역시 지하철역과 지하철 내부에 대대적으로 광고를 하던 유명 병원이다. 이번 논란을 통해 이른바 유명한 병원에서도 성형수술 중 의료사고는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이 재확인됐다.

두 병원은 모두 대한성형외과의사회 회원사였다. 성형외과의사회가 지난해 국민 대홍보를 펼치는 등 자정작업을 강화하기도 했다. 성형외과의사회는 최근 임시이사회를 열고 문제의 B성형외과의원장 15명을 대상으로 회원 자격 정지 처분을 내리기로 했다. 대한의사협회도 뒤늦게 대형 성형병원 모니터링, 의사가 환자 직접 상담, 응급처치실 마련 등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더 이상 의료계 내부 자정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과대광고, 의료윤리 의식 결여, 그림자 의사(섀도 닥터), 의료사고 등 성형외과 안팎의 문제들이 끊임없이 도마에 올랐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성형외과의 협찬을 받아 진행하는 메이크오버 프로그램이 우후죽순 늘고 있다. 외모지상주의를 이용해 영리 추구가 이뤄지는 셈이다.

김진선 한국여성민우회 건강팀 활동가는 “사정이 이렇게 된 데는 환자를 돈벌이 대상으로만 여기는 의료계와 손놓고 있었던 정부의 책임이 막중하다”며 “이번에야말로 전면적인 실태조사를 진행하고 이를 바탕으로 불법·탈법 의료행위가 더 이상 확산되지 않도록 관련 법제도를 보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 보건 당국은 상황이 이렇게 될 때까지 실태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일부 병원을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벌인 적은 있지만 미용 목적 성형시술의 종류, 시행 건수, 의약품 관리 등에 대한 자세한 통계조사가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상윤 건강과 대안 책임연구원(의사)은 지난해 열린 토론회에서 “미용성형 의료기관이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매출을 늘리고 비용을 줄이기 위해 온갖 편법과 탈법, 비윤리적이고 위험한 행동이 늘어간다”며 “이를 통한 이윤 창출 과정이 점점 더 기업화되고 공장화되고, 그 이윤을 가져가는 사람들이 극소수의 금융자본, 투기자본, 일부 의료인들로 한정되고 있다”고 짚었다.

그는 미용성형 부작용과 위험을 줄이기 위해 △기존 법제도가 지켜지지 않는 부분에 대한 철저한 감시·단속 △미용성형 수술을 할 수 있는 의사의 자격조건 설정 △수술의 효과와 부작용에 대한 충분한 설명 △상업적 사이버 치료에 대한 규제 방안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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