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자 개인 병리로 몰아
“정책 집행 과정 보면 인식 개선 한참 부족”

 

고미경 한국여성의전화 상임대표가 1월 21일 성폭행 피해자가 무고죄로 구속되고, 매맞는 여성의 저항을 정당방위로 인정하지 않은 법 집행과정을 보면 우리사회가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말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고미경 한국여성의전화 상임대표가 1월 21일 성폭행 피해자가 무고죄로 구속되고, 매맞는 여성의 저항을 정당방위로 인정하지 않은 법 집행과정을 보면 우리사회가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말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창립 32년인 한국여성의전화가 올해 공동대표를 새롭게 선출했다. 올해부터 3년 동안 고미경(상임대표), 손명희, 오영란 공동대표가 여성의전화를 이끈다. 여성의전화는 서울 본부와 25개 지부로 2인 이상의 공동대표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조직 살림살이와 상담을 총괄하는 고미경(48) 상임대표를 만나 새로운 포부를 들어봤다.

“여성의전화는 여성에 대한 폭력을 근절하고 성평등 사회를 실현한다는 구체적인 과제를 갖고 있는 조직입니다. 가정폭력, 성폭력, 성매매 상담실만이 아니라 쉼터도 운영하고 있어요. 소위 말해 현장성이 살아 있는 곳입니다.”

고 대표는 여성의전화에 몸담은 12년 동안 “하루라도 긴장을 놓을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부산여성회에서 활동하다 2002년 여성의전화에 합류한 뒤 사무처장, 가정폭력상담소 소장, 성폭력상담소 소장, 서울시 희망정책 자문위원, 국민권익위원회 자체평가위원회 위원, 여성부 성폭력·가정폭력 전문가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며 우리 사회 굵직한 여성폭력 사건의 피해자를 위해 뛰어다녔다.

돌이켜보면 지금의 그는 대학 시절 총여학생회 활동에서부터 시작됐다. 대학 때 여학생회 활동으로 여성폭력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고 졸업 후 지역 여성단체, 여성의전화에서까지 늘 현장에 있었다. 지난 1월 공동대표 선거에 출마하면서 강조한 것도 이런 현장성이다. 선거 당시 포부는 세 가지로 ‘여성주의 가치가 살아 숨 쉬는 조직 운영’ ‘여성인권이 실현되도록 활동력 강화’ ‘성평등한 사회를 만드는 새로운 활동에 도전’을 강조했다. “상담 현장의 현실을 바탕으로 여성에 대한 폭력을 용인하는 세력들과는 단호히 맞서 싸울 겁니다.”

여성에 대한 폭력은 다양하게 진행되고 있다. 심지어 검찰의 무고죄 기소로 성폭력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기도 하고, 매 맞던 피해 여성이 남편을 죽였을 때 정당방위가 아닌 살인죄 피의자로 재판을 받는다.

그는 “검사가 성폭행 피해자를 무고죄로 기소해 법정에서 바로 구속되는 일도 있었다”며 “피해자 조사 과정에 통념이 굉장히 많이 작동한다. 검사가 보통 ‘성폭행 피해자라면 그때 바로 자리를 박차고 나와야 하지 않았느냐’라고 묻는다. 여성들이 그렇게 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모르는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성폭력 신고율은 20%가 안 되며 재판까지 가는 경우도 20%대에 머물러 있다.

국회 법사위 소속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이 지난해 국감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친족관계에서만 발생한 성폭력사범 접수가 지난 10년 동안 2배 넘게 늘었지만 기소율을 2003년 74.3%에서 2014년 45.4%로 매년 감소 추세다.

고 대표는 “여성에 대한 폭력이 발생하면 가해자가 정신병이 있다거나, 술을 먹었다 등 병리적 현상으로 몰아가지만 폭력 사용에 대한 핑계에 불과하다”며 “정부 정책에서도 가해자를 병리적으로 모는 것은 우리 사회가 만들어 놓은 성폭력, 가정폭력이 여성에 대한 폭력이고 사회구조적 문제란 것을 희석한다”고 지적했다. 최근 안산에서 의붓딸을 잡고 인질극을 벌이다 살해한 가해자가 사이코패스란 분석이 나오는 데 대한 경계였다.

“안타깝고 분노하는 것은 가정폭력을 정부가 4대악으로 정했지만 정책이 제대로 집행되지 않고 인식도 개선되지 않고 있다는 겁니다. 가정폭력·성폭력·학교폭력·불량식품을 떠들었지만 실제 정부고위 관리나 국회의원이 가해자인 성폭력 사건이 나오고 있어요.”

여성의전화는 올해 스토킹 범죄의 법안 처리를 위해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현재 경범죄 8만원 범칙금으로 처리되고 있지만 실제 현장에 들어오는 상담 사례를 보면 가정폭력·성폭력 피해자들은 대부분 폭력을 피하려고 할 때마다 스토킹을 당하고 있다.

그는 폭행을 피하려다 남편을 살해한 한 여성이 “여성의전화를 좀 더 빨리 알았더라면 좋았을 텐데…”란 말을 기억한다고 했다. 그렇기에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우리와 함께 했으면 좋겠고 우리가 여성과 같이한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활동도 열심히 하겠다”고 말했다.

여성의전화는 매년 ‘분노의 게이지’ 조사 결과를 발표한다. 자체적인 모니터링 결과 언론에 가정폭력, 성폭력으로 인한 살인사건은 3일에 한 명 꼴이었다. 그는 “대부분은 남편이나 남자친구에게 살해당했다”며 “많은 사람들이 자신과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통계로는 3일에 한 번 꼴로 여성에 대한 폭력이 발생하고 있다. 결국 우리의 문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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