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스케치] 공재희 디자이너의 '핸드백 클래스' 특강

 

핸드백에 독특한 멋을 더하는 장식들. ⓒ홍시 제공
핸드백에 독특한 멋을 더하는 장식들. ⓒ홍시 제공

루이비통 스피디백, 프라다 사피아노백, 발렌시아가 모터백... 시대를 풍미한 ‘잇백’(it bag·누구나 갖고 싶어하는 가방)들이다. 잇백 열풍은 ‘짝퉁’ 시장을 키우기도 했으나, 높은 가격과 획일적인 디자인에 질린 사람들은 개성 넘치는 가방을 찾고 있다. 나만의 독특한 스타일에 대한 욕구가 그만큼 커진 셈이다. 직접 고른 가죽과 디자인으로 가방을 만들어 볼 수 있는 가죽 공방이 최근 인기인 까닭이다. 

나만의 특별한 가방을 원하지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이들에게 <핸드백 클래스>(홍시, 2014)는 반가운 길잡이다. 저자인 공재희 디자이너는 20여 년 이상의 경력을 갖춘 핸드백 전문가이자, 가방 브랜드 2곳의 대표다. 그와 독자들이 마주 앉아 핸드백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가 20일 저녁 서울 강남구 삼성동의 홍시 출판사에서 열렸다.

 

참석자들 앞에서 강연 중인 공재희 디자이너. ⓒ김윤주 인턴기자
참석자들 앞에서 강연 중인 공재희 디자이너. ⓒ김윤주 인턴기자

명품백, 저렇게 비싸도 '됩니다'

700만원짜리 샤넬백 뜯어 본 디자이너

탐나는 핸드백은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풋풋한 20대부터 머리가 희끗희끗한 중년 여인까지, 약 스무 명의 사람들이 이날 강연을 찾았다. 여성들뿐이다 보니 자연스레 명품백 이야기가 나왔다. 

“솔직히 하나쯤 갖고 싶은데 정말 비싸잖아요. 가방 하나에 몇백만 원을 투자할 가치가 있나요?” 한 젊은 여성의 질문에 다른 참석자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돈만 있으면 브랜드별로 하나씩 갖고 싶죠." 공 디자이너의 솔직한 답변이 웃음을 자아냈다. "물론 그럴 가치가 있습니다. 괜히 명품이라고 부르는 게 아니죠." 

명품 핸드백은 무엇이 다를까. 가죽이다. 소재의 가치가 핸드백 가격을 좌우한다. 유명한 에르메스 악어 버킨백의 경우 가방 하나당 악어 3마리의 가죽이 필요하다. 에르메스는 전용 호주 농장에서 직접 사육하는 최고급 악어가죽만을 사용하기로 유명하다.

좋은 가죽은 장인의 손 끝에서 하나의 작품으로 다시 태어난다. 핸드백 장인들이 직접 제공하는 철저한 품질관리 서비스도 빼놓을 수 없다. “에르메스 악어백은 장인이 그 핸드백에 쓰인 악어가죽을 갖고 직접 수선해 줍니다. 단순히 소재와 가공비만 계산하면 명품백을 살 이유가 없겠죠. 이런 고급 서비스 비용도 낼 용의가 있다면 돈이 절대 아깝지 않다고 봐요." 

공 디자이너 자신은 명품백이 없단다. 이유가 재미있다. “가방을 사면 분해해 보는 습관이 있거든요. 샤넬 퀼팅백을 사서 뜯어본 적도 있어요. 내부 보강 구조가 궁금해서 해체해 봤죠." 핸드백 디자이너다우면서도 쉽게 상상할 수 없는 이야기다. 참석자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근데 다시 조립은 못 하겠더라고요.” 멋쩍은 대답에 좌중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게 핸드백 디자이너의 일이다. 늘 디자인과 소재를 연구해야 남다른 핸드백을 만들 수 있다. 이런 노력을 기울여 시즌마다 제작하는 핸드백 샘플만 6~70개. 대기업 브랜드의 경우 수백 개에 이르기도 한다. 

이렇게 매 시즌 쏟아져 나오는 핸드백 디자인만 수천 가지지만, 내 마음에 쏙 드는 핸드백 하나 건지기가 쉽지 않다. 눈에 불을 켜고 쇼핑몰을 뒤지느니 내가 원하는 핸드백을 직접 만드는 편이 나을 수도 있다고 공 디자이너는 말했다.

 

참석자의 핸드백을 예로 들며 누구나 쉽게 가방을 만들 수 있다고 말하는 공재희 디자이너. 혼자 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면 공방 작업도 좋다. 25~30만 원만 들이면 샘플실에 가방 제작을 맡길 수도 있다. ⓒ홍시 제공
참석자의 핸드백을 예로 들며 누구나 쉽게 가방을 만들 수 있다고 말하는 공재희 디자이너. 혼자 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면 공방 작업도 좋다. 25~30만 원만 들이면 샘플실에 가방 제작을 맡길 수도 있다. ⓒ홍시 제공

“핸드백 만들기는 정말 쉬워요.” 그는 재차 강조했다. 과정은 이렇다. 일단 인터넷 서핑 등으로 원하는 핸드백 디자인을 찾는다. 소재(가죽)를 고르고, 가방 몸통, 입구, 핸들 등 세부적인 스타일을 결정한 후 종이 샘플을 만든다. 샘플을 펼치면 도안이 된다. 이 도안을 바탕으로 실제 가죽을 자르고 붙여 꼼꼼히 바느질하면 핸드백이 탄생한다. 실제 디자이너들의 작업 과정도 이와 동일하다. 

누구나 핸드백을 만들 수 있다는 그의 설명을 들으면 역설적으로 핸드백 만들기가 얼마나 복잡한 과정인지 알 수 있다. 가죽을 펴서 저미고 유제(가죽 표면이 마르지 않게 잘 보존하려 기름 코팅하는 것)처리하는 작업부터, ‘간지’나는 금속 단추 하나 구하려 동대문 시장을 샅샅이 뒤지는 일까지...수없이 많고 섬세한 공정의 연속이다. 그것도 단시간에 따라잡을 수 없는 지식과 노하우가 뒷받침될 때에야 좋은 합이 나온다. 탐나는 핸드백은 결코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는다. 

가죽 공방업을 꿈꾼다면?...온라인, 중저가 시장 공략하라

'내가 만든 가방'이 명품백인 시대

어려운 작업이지만, 자신의 손으로 가방을 만드는 일에는 특별한 매력이 있다. 아예 이쪽으로 진로를 잡을까 고민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제약회사 연구원으로 일하는 30대 여성 A 씨도 그중 하나다. “원래 학교 다닐 때부터 디자인 쪽에 관심이 많았어요. 아예 직장을 그만두고 공방을 차릴까 생각 중인데 아무래도 밥벌이 고민이 되네요.” 

“전혀 다른 분야 출신이더라도 핸드백 디자이너를 할 수 있어요.” 공 디자이너도 패션 디자인이 아니라 시각디자인을 전공했다며 A씨를 격려했다. 하지만 냉정한 충고도 잊지 않았다. “너무 욕심내지 마시고 취미로 일하는 게 가장 좋아요.” ‘블로그 하듯’ 조금씩 작업하는 게 오히려 디자이너로서 개성을 발휘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는 조언이다. “공방 차렸는데 잘 안 됐다고 원망은 마시고요. 소재 구매나 제작 등에 대해서는 제가 다 조언 드릴 수 있어요." 솔직한 그의 발언에 참석자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웹 기획자로 일하다가 출산 후 ‘경력단절녀’가 됐다는 한 40대 여성도 고민을 털어놓았다. “이 쪽에 관심이 많은데 제 나이가 걸리네요. 40대 이상이면 브랜드 업체에서 일을 시작하기 어렵겠죠?” 

“현실적으로는 어려워 보이네요. 하지만 웹을 잘 알고 계실 테니 그 점에서는 오히려 더 유리할 수도 있어요.” 온라인 쇼핑몰 매출이 홈쇼핑 매출을 훌쩍 뛰어넘는 시대다. 공 디자이너 자신도 온라인 쇼핑몰을 구축하는 데 가장 진땀을 뺐단다. 온라인 공간의 생리를 잘 알고 있다면 블로그나 온라인 샵 운영을 구상해 보는 것도 좋은 전략이될 수 있다. 

핸드백 시장 분석도 덧붙였다. “저렴한 에코백과 비싼 명품백 사이의 중간 시장이 없어요. 핸드백 계의 ‘유니클로’(경기 침체 속에서도 강세를 보이고 있는 대표적인 중저가 의류 브랜드)가 나오면 좋은 반응을 얻지 않을까 싶어요.” 

 

강연에 귀 기울이는 참석자들. ⓒ김윤주 인턴기자
강연에 귀 기울이는 참석자들. ⓒ김윤주 인턴기자

돌고 돌아 다시 명품백이 화제에 올랐다. “샤넬, 에르메스...다 외국 브랜드잖아요. 우리나라에서도 명품백이 나올 수 있을 거라고 보시나요?”

공 디자이너는 어깨를 으쓱했다. “글쎄요. 한국 시장 규모가 너무 작아요. 자체적인 브랜드를 국내에서만 이끌어가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경기 침체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경기가 나쁘니까 기업들이 디자인, 소재 개발에도 덜 노력하죠. 모험은 않고 안전한 콘셉트만 내놓으려고 해요. 사람들의 취향과 욕구는 다양한데 제품은 다 비슷비슷하니까 (수요를) 못 따라잡는 거죠. 업계가 딜레마에 빠져 있어요.” 

그러나 점점 ‘똑똑해지는’ 소비자들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코치(명품 브랜드) 백을 '직구'로 8~9만 원이면 사는 시대잖아요. 유행이나 브랜드보다 자신의 기준에 맞는 합리적인 소비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고요. 기존 명품백보다는 오히려 (무게가) 가벼운 핸드백이 더 잘 나가는 시대가 올지도 몰라요.” 

공 디자이너의 말대로 오늘날 ‘명품백’의 개념은 바뀌고 있다. 너도나도 드는 '잇백'은 가고 자신만의 기준을 만족하는 가방이 뜬다. “자기 브랜드를 꿈꾸는 젊고 실력 있는 디자이너들이 많아요. 이런 흐름 속에서 직접 만드는 가방 문화도 더 커질 거예요. 꼭 전문 디자이너가 아니어도 좋아요. 일단 가죽으로 직접 가방을 만들어 보면 아실 거예요. 그 즐거움에서 헤어 나오기가 얼마나 어려운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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