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0년 동안 성에 관한 것들이 천지개벽하듯 바뀌었다. 이제 ‘섹시’하다는 말은 모욕이 아니라 남녀 모두 듣고 싶어 안달하는 말이 됐다. 대부분 광고가 노골적인 시선과 몸짓으로 유혹하는 남녀들로 넘쳐난다. 모든 인간관계도 경제적 관계로 환원됐다. 순정, 사랑, 이런 것을 말하는 사람이 촌스럽게 느껴지는 시대다. 그런데 왜 유독 성관계만은 경제적 관계가 돼서는 안 되는가? 나아가 이를 국가가 법으로 막아야 하는가?
한쪽에서는 성매매는 인간에 대한 폭력이라고 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성매매라는 직업과 행위 자체를 불법으로 만드는 것은 오히려 직업 선택과 관련한 인간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성매매 근절에 앞장섰던 사람도 나서서 집결지를 합법화해 생계형 성매매는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얼마 안 있으면 성매매특별법의 위헌성 여부가 헌법재판소에서 판가름난다. 간통죄 폐지에 이어 성매매 문제가 우리 사회의 뜨거운 감자가 될 조짐이다.
우리 사회 안에서 성매매 합법화에 앞서 생각해보아야 하는 선결 과제들이 있다. 우리나라 역사 안에서 여성의 성은 남성 중심 국가권력에 의해 수탈당해온 측면이 있다. 고려시대와 조선조에 공녀가 있었고 일제에 의해 수탈된 위안부들이 있었다. 이외에도 환향녀, 양공주라 불리던 여성들과 기생관광에 종사한 여성들, 이들 모두 큰 틀 안에서 보았을 때 누군가를 위해서 거의 강제로 성을 수탈당했던 여성들이다. 지금도 미국에서, 일본에서, 대만에서 매춘을 하고 있는 한국 여성들이 상당수 있다.
한국 여성들에게 성적 대상화는 의식하건 아니건 간에 역사적 트라우마다. 일본 우파는 지금 일본군위안부들이 성매매 여성들이었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돈을 받고 민간인들이 운영한 군 위안소에서 일을 했다면 일본이라는 국가가 나서서 여성을 성노예화했다는 혐의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주장에는 직업적 성매매 여성은 어떻게 취급돼도 좋다는 생각, 남성의 성욕은 자연스러운 것으로 해소돼야 한다는 생각, 식민지 인간은 얼마든지 성적 대상화될 수 있다는 생각이 숨겨져 있다. 한국은 성매매 천국인데 굳이 일본을 탓할 것이 무엇인가 하는 생각도 저변에는 있을 것이다.
자유주의 사회 안에서는 누구나 성적 자기결정권을 갖는다. 극단의 자유주의자는 자신을 노예로 팔아넘기는 문서에 서명할 자유가 개인에게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대명천지에 어떤 자유주의 사회가 그런 자유를 개인에게 허용하려면 그 사회는 계약을 둘러싼 개인의 권리와 법적 정의를 그 이전에 잘 수립해야만 한다.
우리 사회가 여성들에게 평등한 권리를 어느 모로나 다 잘 보장하고, 불법과 합법 사이의 경계를 잘 관장하는 법의 지배가 정의롭게 이루어지고 있는 사회라면 나는 성매매 합법화를 긍정적으로 검토할 용의가 있다. 한국 사회는 취업, 승진에서의 차별이 여전하고 유리천장은 아직도 두껍다. 생계를 위해 성매매로 내몰리는 여성들에게 성매매도 또 하나의 직업이라고 하면서 그것을 보장해주는 일보다 그에 앞서 여성들의 생계를 위한 다른 조건들을 철저히 챙겨보는 것이 순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