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2차례 가정폭력 사건 모두 ‘선처’
경찰, 모니터링 불구 사실 파악도 못 해
“가정폭력 살인 막으려면 국가가 나서야”

 

지난해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가정폭력 예방의 날 보라데이 제정 기념행사에서 엄마와 아이가 가정폭력 예방 메시지가 담긴 티셔츠를 살펴보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지난해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가정폭력 예방의 날 보라데이 제정 기념행사에서 엄마와 아이가 가정폭력 예방 메시지가 담긴 티셔츠를 살펴보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최근 안산 지역에서 또다시 여성이 남편에게 살해당했다. 지난해 11월 발생한 이른바 ‘안산 암매장 살인사건’과 지난 1월 발생한 ‘안산 인질극 사건’에 이은 참극이다. 안산에서 연이어 가정폭력 사건이 살인으로 비화되면서 검찰과 경찰의 미온적 대응에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지난 6월 17일 A씨가 경기 안산시 단원구 자택에서 아내 B씨를 수차례 발로 차고 목 졸라 살해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 사건이 상습적인 폭력 끝에 벌어진 가정폭력 살인사건이라는 사실이 알려진 것은 7일이 지난 후였다. 뒤늦게 사건 전 검찰과 경찰의 미온적인 대응이 있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보도에 따르면 수원지검 안산지청은 지난해 7월과 9월 발생한 A씨의 가정폭력 사건을 선처했다. 처음 경찰에 사건이 접수된 7월 1월 술을 마신 A씨가 B씨의 머리를 흔들고 밀어 넘어뜨리는 등 폭행했다. 당시 경찰이 불구속 기소 의견으로 사건을 검찰에 송치했으나 검찰은 기소 대신 상담위탁 및 보호관찰 처분 의견으로 법원 가정보호사건으로 넘겼다. 검찰은 9월 28일에도 흉기를 든 채 B씨에게 폭력을 가한 가해자 A씨를 또다시 기소하지 않은 채 보호관찰소 교육조건부 기소유예로 ‘솜방망이’ 처분을 내렸다.

경찰의 대응도 안일하긴 마찬가지다. 관할 경찰서인 안산단원 상록경찰서는 7월 사건이 발생한 이후 10여 차례에 걸쳐 해당 가정에 사후 모니터링을 실시했지만, 가정폭력이 계속되고 있다는 실상도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화가 연결되지 않으면 모니터링을 건너뛰는 등 모니터링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안산단원경찰서 관계자는 “올해만 따지면 규정보다 더 많이 전화 모니터링을 했다”며 “사건이 발생하기 전인 지난 5월에는 모니터링을 통해 (A씨가) 폭력성을 띤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폭행이 있으면 경찰에 신고하거나 법원의 피해자보호명령 제도를 신청하라고 안내했다”고 반박했다. 폭력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현장에 나가지 않은 이유에 대해 묻자, 이 관계자는 “올해 A씨에 대한 가정폭력 신고가 없어 ‘고위험군’에서 제외됐기 때문에 전화 안내 말고는 별도 조치를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설명했다. 

사건이 벌어진 지역은 가정폭력 사건에 대한 경찰의 안일한 대응으로 연이어 여성들이 살해당한 곳이다. 지난 2월 경찰은 미온적 대처로 가정폭력 사건이 살인으로 비화한 것을 막지 못했다는 비판이 일자 ‘가정폭력 엄정 대응을 위한 대응체계 개선계획’을 일선 경찰서로 내려 보냈다. 재발 방지를 위해 매일 모든 가정폭력 사건의 조치 결과를 살피고, 경찰 교육을 강화하는 등 가정폭력 사건에 적극 개입할 것을 선포한 것이다. 부랴부랴 제도를 마련했지만 현장에서 제대로 집행되지 못한 셈이다.

최희진 한국여성의전화 인권정책국장은 “이번 사건은 가해자가 흉기를 들었는데도 위협적인 폭력이 아니라고 판단한 사법기관의 인식 문제, 상담조건부 기소유예 제도를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라고 보는 법 제도의 문제가 함께 녹아 있다”며 “실효성 낮은 가정폭력처벌법을 개정하고 국가가 가정폭력 문제에 적극 개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남편, 애인 등 친밀한 관계에 있는 남성에 의해 살해당한 여성은 최소 114명에 달한다. 한국여성의전화가 지난해 언론에 보도된 살인사건을 분석한 결과다. 분석 결과를 보면 살인미수로 살아남은 여성은 최소 95명이었다. 최소 1.7일에 여성 1명이 남편이나 애인 등 친밀한 관계인 남성에게 살해당하거나 살해당할 위협에 처하는 셈이다.

한편, 지난 6월 26일 한국여성의전화는 ‘안산 암매장 사건’에 대한 항고장을 서울고등검찰청에 제출했다. 경찰의 안일한 대응으로 여성들이 살해당하는 현실을 알리고 이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묻기 위해서다. 앞서 지난해 12월 41개 단체가 관련 담당 경찰관들과 그 상급자를 직무유기와 업무상 과실치사로 고발했으나, 수원지방검찰청 안산지청은 증거불충분으로 인한 불기소처분을 내린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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