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노벨문학상 수상자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한국서 큰 반향

 

2015 노벨문학상 수상자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는 일명 ‘목소리 소설’이라 불리는 장르를 개척했다. ⓒ뉴시스ㆍ여성신문
2015 노벨문학상 수상자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는 일명 ‘목소리 소설’이라 불리는 장르를 개척했다. ⓒ뉴시스ㆍ여성신문

“여자의 전쟁에는 여자만의 색깔과 냄새, 여자만의 해석과 여자만이 느끼는 공간이 있다. 그리고 여자만의 언어가 있다. 그곳에 영웅도, 허무맹랑한 무용담도 없으며, 다만 사람들, 때론 비인간적인 짓을 저지르고 때론 지극히 인간적인 사람들만이 있다.”

지난 8일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벨라루스 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Svetlana Alexievich·67)는 전쟁에 참전했던 200여 명의 여성들의 이야기를 모은 책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크라이나 태생인 알렉시예비치는 소설가도, 시인도 아니다. 그는 일명 ‘목소리 소설’이라 불리는 장르를 개척했다. 수백 명의 사람을 인터뷰해 모은 이야기를 문답 형식이 아닌 다큐멘터리 산문으로 풀어냈다.

알렉시예비치는 1948년 5월 31일 우크라이나 이바노프란콥스크에서 군인 가족의 딸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벨라루스인이고, 어머니는 우크라이나인이다. 아버지가 군에서 동원 해제된 후 그들은 아버지의 고향인 벨라루스로 돌아가 정착했고, 그곳에서 아버지와 어머니는 둘 다 교사로 일했다. 1966년 고멜 시 나로블의 지방 신문사에서 일하던 알렉시예비치는 민스크에 위치한 벨라루스 국립대학교에서 저널리즘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과 아프가니스탄-소련 전쟁, 1986년 체르노빌 원전사고, 공산주의 소멸 이후 자살 문제 등의 소련 비극과 붕괴를 시대적으로 묶은 작품을 선보였다. 1983년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의 집필을 끝냈지만, 2년 동안 출간되지 못했다. 소비에트 여성들의 아픔과 고뇌에 주목했기 때문이었다. 첫 책 『나는 내 마을을 떠났다』 발표 이후 이미 반소비에트적 정서를 가진 반체제적 인사라는 평판을 얻고 있었다. 벨라루스 중앙위원회의 공산당 명령에 따라 출간된 그의 책은 폐기됐고, 많은 사람이 신화화된 전쟁에 해를 입히는 작가를 용서하지 못했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가 한국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가 한국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1985년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집권하면서 새 시대가 왔다.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는 벨라루스의 민스크와 모스코에서 동시에 출간되어 200만 부 이상이 팔렸다. 작가 자신이 ‘소설-코러스’라고 부르는 이 작품은 전쟁을 겪은 여자들의 독백과 제2차대전의 알려지지 않은 일을 이야기하는 독백으로 이뤄졌다. 작품은 대중뿐 아니라 수많은 전쟁작가들에게 찬사를 받았다. 미국, 독일, 영국, 스웨덴 등 모두 35개 언어로 번역됐으며 한국에서는 10월 1일 문학동네에서 출간됐다. 그의 모든 작품은 제2차 세계대전 때부터 러시아 역사와 함께 진행된다.

작가는 전쟁에 직접 참전했거나 목격한 여자들의 이야기를 정리해 이 한 권의 책에 담아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참혹했던 전쟁 제2차 세계대전은 여자들을, 심지어 어린 소녀들까지 전장으로 내몰았다. 조국과 가족의 이름으로 여자들은 총칼을 들고 전선에서 남자들과 똑같이 싸웠지만, 전쟁이 끝나고도 여자들에겐 또 다른 전쟁이 기다리고 있었다. 다시 예쁘게 미소 짓고, 높은 구두를 신고, 결혼 준비를 해야 하는 여자로 돌아가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여자들의 전쟁은 잊혀버렸다.

“나는 여러 번 자신에게 물었다. 절대적인 남자들의 세계에서 당당히 자신의 자리를 차지해 놓고 왜 여자들은 자신의 역사를 끝까지 지켜내지 못했을까? 자신들의 언어와 감정들을 지키지 못했을까? 여자들은 자신을 믿지 못했다. 하나의 또 다른 세상이 통째로 자취를 감춰버렸다. 여자들의 전쟁은 이름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나는 바로 이 전쟁의 역사를 쓰고자 한다. 여자들의 역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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