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만에 면피성 사과한 옥시
사망자 20여명 냈지만
사과 한 번 안한 애경
참사 방치한 무능한 정부
이제라도 진실 규명해야
‘안방의 참사’로 불리는 가습기 살균제 인명피해 사건은 제조부터 검증, 대응까지 ‘총체적 인재’다. 하지만 사건 5년만에 면피성 사과한 옥시레킷벤키저(옥시)와 20여명의 사망자를 냈지만 사과 한 번 하지 않은 애경, 참사를 방치한 무능한 정부로 인해 피해자와 가족들을 상처는 더 깊어지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에서 가장 많은 피해자를 낸 외국계 제조사 옥시가 2일 공식 사과하고 지원기금 50억원을 추가로 내놓겠다고 밝혔다. 아타 울라시드 사프달 옥시 대표는 기자회견을 열고 “가습기 살균제로 폐 손상을 입은 모든 피해자와 가족께 깊이 사과드리고 포괄적이고 세부적인 보상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2011년 사건이 불거진 지 5년 만에 나온 옥시의 공식 사과다. 당시 옥시 등의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한 이들 중 정부에서 확인한 사망자는 146명이며 이 가운데 옥시 사용자는 103명에 이른다.
사프달 사장은 보상 계획으로 △7월까지 독립적인 전문가 패널을 구성하고 △폐손상 1~2등급 피해자에게 보상 계획을 고지하며 △기금 100억원으로 3·4등급 피해자를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검찰 수사가 진행되고 불매 운동이 거세지자 면피용 사과를 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다. 옥시 측은 뒤늦은 사과에 대해 “피해자가 원하는 부분을 이해하고 경청해 함께 해결하고자 노력했다”며 “(사태의) 상당 부분이 법원 조정절차로 합의돼 종결됐다”고 해명했다.
피해자들은 사과를 거부했다. 가습기 살균제로 아이를 잃은 최승운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유가족 연대’ 대표는 “지난 5년 동안 사과 요구를 외면하다 이제야 내놓은 형식적 사과를 거부한다”며 “옥시는 자진 철수하고 폐업하라”고 했다. 그는 “아이를 잘 키워보려고 매일 가습기에다 저들이 판 살균제를 넣었다. 우리 아이를 내 손으로 4개월 동안 서서히 죽인것”이라며 절규했다.
사태가 커지면서 옥시 제품에 사용된 폴리헥사메틸렌구아디닌(PHMG)뿐 아니라 수사에서 제외된 클로로메칠이소치아졸리논(CMIT)에 대해서도 원점에서 재조사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CMIT를 원료로 삼은 애경산업의 ‘가습기메이트’를 쓰다 사망한 사람은 27명, 피해자는 128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애경은 현재까지 피해자 가족들에게 단 한차례의 사과를 하지 않으면서 공분을 사고 있다. 애경 측은 문제가 된 제품은 SK케미칼 측에서 제조했고 애경은 판매만 했기 때문에 사과를 할 필요도 없고 책임을 질 필요도 없다는 입장이다.
최근 시중에 판매 중인 다림질 보조제 등에도 이 물질이 사용되고 있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제2의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발생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
지난 5년간 정부가 나서지 않을 때부터 가습기 살균제 제조사와 싸움을 벌여왔던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모임’과 환경보건시민센터 등은 옥시의 사과를 거부하고 옥시의 영국 본사 레킷벤키저 라케시 카푸르 등 이사회 구성원 8명 전원을 살인죄 등으로 검찰에 고발했다. 이들은 영국 현지에서 라케시 카푸어 최고경영자와 면담하고 본사 차원의 책임을 요구하기로 했다.
수사를 확대해야 한다는 여론이 커지면서 검찰도 수사 범위를 넓히는지 검토 중이다.
피해자와 시민단체는 수사 확대 대상으로 △애경, 이마트, GS리테일 등 다른 기업 △옥시의 영국 본사 △환경부, 보건복지부, 산업통상자원부 등 부처 공무원을 지목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