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정로 한국과학기술원(KAIST) 인문사회융합과학대학장

사회학·과학기술 접목한

과학기술 사회학 1세대

여성의 눈으로 본 과학

약자의 권익에 부응할 것

 

과학기술 사회학자 윤정로 한국과학기술원(KAIST) 인문사회융합과학대학장은 “남성과 다른 경험을 하며 살아왔기 때문에 남성들과는 다른 눈으로 또 다른 목소리를 낼 수 있다”며 과학기술계 여성 참여 확대를 강조했다.free prescription cards sporturfintl.com coupon for cialis
과학기술 사회학자 윤정로 한국과학기술원(KAIST) 인문사회융합과학대학장은 “남성과 다른 경험을 하며 살아왔기 때문에 남성들과는 다른 눈으로 또 다른 목소리를 낼 수 있다”며 과학기술계 여성 참여 확대를 강조했다.
free prescription cards sporturfintl.com coupon for cialis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당신이 여성만 아니었다면….” 경기여고, 서울대 사회학과, 미국 하버드대 사회학 박사과정까지 엘리트 코스를 밟은 그에게 주변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인문사회융합과학대학장 윤정로(62) 교수의 이야기다. 남성 중심의 학계에서 여성이라는 소수에 속했던 윤 교수는 스스로 주류보다는 비주류의 삶을 택했다. 1980년대 당시 주류 사회학은 발전, 산업, 노동사회학이었지만, 그는 국내에선 아직 낯설었던 ‘과학기술 사회학’을 들여왔다. 특히 90년대부터 과학기술계에서 차별받고 배제되온 여성 문제를 연구했다. 주변인들의 말대로 윤 교수가 여성이 아니었다면 접하기 어려웠을 이슈일테다.

윤 교수는 1991년 카이스트에 부임해 인문사회과학부 교수로 교단에 서고 있다. 그간 과학과 사회학을 접목시킨 과학기술 사회학자로, 한국사회학회 회장, 한국여성학회 부회장, 대통령자문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위원 등 숨 가쁘게 활동해 왔다. KT 이사회 최초의 여성 의장을 지내기도 했다.

사회학자인 그가 과학기술과 사회학을 접목한 과학기술 사회학을 연구하게 된 계기가 궁금했다. 우연한 기회가 학자로서 그의 운명을 결정지었다.

“미국에서 국가와 자본의 관계를 주제로 박사학위를 논문을 준비하면서 대표 사례로 선택한 것이 한국의 반도체 산업이었어요. 반도체 산업의 발전사를 찾다보니 기술을 알지 못하고는 파악할 수 없었어요. 그러던 중 우연히 신규 조교수 후보들의 잡토크에 갔는데 사회학자들이 과학기술을 논하고 있더라고요. 그때 처음 과학기술 사회학이라는 학문을 만난거죠.”

새로운 분야가 무척 흥미로웠지만 ‘한국에서 과학기술 사회학자로서 경력을 이어갈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은 지을 수 없었다. 주류 사회학도 아니고, 거기다 한국에서는 생소한 학문으로 대학에서 교수직을 얻을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기 때문이다. 당시 과학사와 과학철학은 알려져 있었지만 과학기술 사회학을 강의하는 대학은 찾아볼 수 없었다. 한국에 돌아와 과학자인 남편의 직장이 있던 대전을 거처로 삼게 됐다. 강사로 이곳저곳에서 강의를 하던 중 카이스트에서 사회학개론 강의를 권유받은 것이 계기였다. 1990년 1학기 사회학을 가르치면서 퍼뜩 생각이 떠올랐다. ‘과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에게는 일반 사회학보다 과학기술 사회학을 가르치는게 좋지 않을까.’ 그 길로 학과장에게 달려가 허락을 받아냈다. KAIST 과학기술 사회학의 첫 시작이다.

최근까지 과학기술 사회학은 사회학자들에게는 변방이라고 불렸고, 과학기술자들은 필요성에 의구심을 보였다. 윤 교수는 이에 대해 “현대 사회에서 과학기술의 발전이 개인의 삶과 사회구조에 커다란 변화의 계기를 제공하고 있다”며 “과학기술의 변화에 따라 우리의 삶의 어떻게 변화될 것인가의 문제는 호기심과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매혹적인 주제”라고 설명한다.

실제로 과학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미래에 대한 기대와 함께 과학기술에 대한 의혹과 불안, 우려와 비판의 목소리도 함께 높아지고 있다. 과학기술이 개인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것은 물론 점점 다양하고 중대한 사회 문제와 갈등, 정책 결정의 핵심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구글의 인공지능 ‘알파고’가 이세돌 9단과의 바둑 대결을 예로 들 수 있다. 인공지능이 바둑 대결에서 인간에서 승리하면서 ‘인공지능 쇼크’가 한국을 강타했다. 어떤 사람들은 인공지능의 발달로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을 것이라고 내다봤고, 일부는 이번 대국의 결과를 인공지능이 인류를 위협할 수 있다며 두려움을 느끼기도 했다.

윤 교수는 저서 『사회 속의 과학기술』에서 과학기술과 사회 변화 간의 연관성에 대해 이렇게 서술했다.

“기존의 학문적 논의는 주로 산업 조직과 노동, 경제구조, 정치, 군사 등 공정 영역에서 나타나는 거시적 변화에 집중돼 있었다. 그러나 과학기술은 이런 거시적 변화와 함께 사적 영역에서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방식에도 커다란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이런 일상생활의 변화는 다른 어떤 변화에 못지 않게 중대한 사회적 함의를 갖고 있다.”

그렇다면 과학기술은 여성의 삶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을까. 이 질문에 윤 교수는 “가사보조기술은 발전했지만 여성의 가사노동 시간은 줄지 않았다”고 답했다. 과거 세탁기와 진공청소기, 냉장고가 출시되면서 여성들이 가사노동에서 해방될 것이라는 시각이 많았다. 지금도 “요즘 여자들은 살기 편해졌어. 수도꼭지만 틀면 더운물 나오지, 세탁기와 로봇청소기가 빨래, 청소해주고, 남자들이 집안일도 도와주니 얼마나 좋으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가전제품이 가사노동의 육체적 강도는 덜어주지만 실질적인 가사노동 시간을 줄이는데는 한계가 있다는 설명이다.

 

윤정로 한국과학기술원(KAIST) 인문사회융합과학대학장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윤정로 한국과학기술원(KAIST) 인문사회융합과학대학장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쇼핑을 하고 운전을 하고 은행 업무를 보는 것은 가사노동일까요? 아닐까요? 가족을 위한 제품을 사는 쇼핑, 자녀를 학교에 데려다 주고 데려오는 일, 세금을 납부하는 것은 여성이 도맡아요. 하지만 주부의 일은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거죠. 가전제품이 발전하면서 오히려 가사노동이 여성이 전담하게 되기도 하는 거죠.”

‘스마트홈’으로 대변되는 가정생활에서의 디지털 혁명은 조금 다르지 않을까하는 기대감에 물었다. 최근 백색가전제품에 디지털기술을 접목, 집안일을 알아서 해 주는 사물인터넷(loT)가 각광받고 있다. 냉장고, TV, 에어컨이 홈네트워크, 스마트폰와 연결되면서 집 밖에서도 집안일을 처리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여성을 가사노동에서 해방시킬 수 있을지에 대해선 “특별히 여성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다소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윤 교수는 “여성의 가사노동 시간을 줄이는 데는 가사기술 도입이나 인터넷 성능의 향상이 아니라 여성의 취업 여부가 가장 큰 변수로 작용했다”고 말했다. “‘잘 잤다’ 한 마디에 커피포트의 물이 끓을 만큼 가사노동이 수월해지고 자동화된다 하더라도, 그 ‘잘 잤다’라는 말을 여성이 해야 하는 한, 여성이 가사노동의 부담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과학기술을 여성의 눈으로 보는 그의 관심은 여성 과학기술자 확대로도 이어진다. 1999년 ‘카이스트’라는 TV 드라마가 인기를 끌었다. 과학기술 학도들의 삶을 진지하게 그려내 낯설고 어려운 첨단과학기술 지식을 친근하게 전달하는 데 성공했다는 호평을 받았다. 드라마에는 전자공학과의 여성 교수(이휘향 역)가 주요 인물로 등장한다. 그러나 실제로 당시 카이스트에선 이공계 여성 교수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여학생 숫자도 적었다. ‘윤정로’라는 이름만 보고 남자 교수라고 생각하는 학생들도 적잖았다. 그만큼 여성 교수와 여학생은 소수였다. 자연스레 여성이던 윤 교수에게 여학생들이 상담 요청이 이어졌다. 그들은 대부분 이공계 여성들이 겪는 성차별과 유리벽으로 인한 문제를 토로했다. 여성을 받지 않으려는 랩(Lab·연구실)에 대한 고민부터, 여성이 한 명도 없는 랩에서의 적응 등에 대한 것이었다. 제자들에 대한 관심이 자연스레 여성 이슈로 이어지면서 과학기술계 여성 참여 확대를 외쳐왔다. 그가 여성 과학자에 관심을 갖는 또 다른 이유는 과학기술계 발전과도 맞닿아 있다.

“과학기술이 사회와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기술이 어떻게 발전하고 어떻게 사용되는지에 대해 인간이 통제력이 있다고 생각하는 한 여성의 눈과 목소리가 필요합니다. 여성은 남성과 다른 경험을 하며 살아왔기 때문에 남성들과는 다른 눈으로 또 다른 목소리를 낼 수 있어요. 이러한 다양성이 결국 과학기술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고 믿습니다.”

윤 교수는 사회적 약자였던 ‘여성의 눈’을 통해 다양한 사회적 약자 집단들의 관심과 권익에 부응할 수 있는 새로운 과학기술 영역과 발전 방향을 모색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여성의 눈으로 지금까지 보이지 않았던 집단, 들리지 않았던 목소리에 기울이는 관심이 과학기술의 사회적 책임을 실현하는 데 뿐만 아니라, 국가경쟁력을 높이고 과학기술 속의 여성 문제를 궁극적으로 해결하는 길이 될 수 있어요. 여성이 여성의 입장을 잘 이해하고 노인이 노인의 상황을 잘 알 수 있잖아요.”

과학기술계는 지난 10여년간 변화도 상당했다. 과학기술 분야로 진출하는 여성의 숫자가 많아지고 전공 분야도 다양해졌다. 여러 분야에서 리더로 활약하는 여성 과학기술인들도 많아졌다. 특히 20대 국회 비례대표 1번이 모두 이공계 여성들이라는 점은 여성 과학기술인들에 대한 기대를 증명한다. 하지만 아직도 많이 부족하다.

“아직도 과학기술계에 더 많은 여성이 필요해요. 과학기술계 차별을 없애고 성평등을 위해서요. 과학기술이 현대사회에서 경력과 부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잖아요. 여성들이 차별받고 제대로 진출하기 어렵다면 젠더 불평등은 해소되기 어려워요. 젠더 불평등 해소를 위해서도 여성의 참여는 필요합니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