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천성 질환아 낳은 간호사 4인

2심서 산재 인정 판결 뒤집혀

임신 노동자 보호 못하고

생리통·생리불순은 개인 탓

 

열악한 병원 환경 탓에 선천성 질환아를 낳은 간호사 4인이 산재 인정을 받지 못했다.(사진은 해당기사와 관련없음) ⓒ뉴시스·여성신문
열악한 병원 환경 탓에 선천성 질환아를 낳은 간호사 4인이 산재 인정을 받지 못했다.(사진은 해당기사와 관련없음) ⓒ뉴시스·여성신문

산업재해(산재) 판정에 있어 여성 건강이 외면당하고 있다. 열악한 노동 환경 탓에 선천성 질환아를 낳은 간호사 4인이 산재 인정을 받지 못했다. 태아의 건강은 여성 노동자 건강 영역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법원의 판결은 여성 노동자의 건강권이 사각지대에 놓여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2009년 제주의료원 간호사 15명이 임신을 했다가 5명이 유산을 했다. 게다가 이들 중 4명은 선천성 심장질환을 가진 아이를 낳았다. 건강한 아이를 출산한 경우는 6명에 불과했다. 이 간호사들의 유산율(33%)은 당시 전국 평균(20.3%)의 약 1.6배였다. 2010년에도 12명이 임신해 4명이 유산했다.

서울대와 산업안전연구원의 두 차례 역학조사 결과, 간호사들의 유산과 선천성 질환아 출산은 업무 환경과 관련 있음이 입증됐다. 그 시기 제주의료원 간호사들은 임금 체불로 인한 인력 감축으로 인해 살인적인 노동 강도에 시달려야 했다. 일반 병동 간호사 1명이 돌봐야 하는 환자가 평균 40~60명의 환자를 달했다.

매일 두세 차례 알약을 분쇄하는 일도 해야 했다. 이 약들 중에는 미국 식품의약국(FDA) 기준으로 생명이 위독한 경우가 아니면 임산부의 복용이 금지되는 D등급 의약품이 37종, 임산부와 가임기 여성의 복용이 완전히 금지되는 X등급 의약품 17종이 포함돼 있었다.

그런데 지난 5월 서울고법 행정11부는 질병에 걸린 아기가 아닌 간호사들은 요양급여를 받을 권리가 없다고 판결했다. 근로복지공단이 “아이들은 근로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간호사들의 산재보험 요양급여신청을 반려한 것이 합당하다는 결론이다. 산재로 인정한 1심을 뒤집은 것이다. 게다가 재판부는 “재해를 입은 당사자인 아기들의 이름으로 요양급여를 받을 권리가 있는지는 별도의 논의대상으로 한다”면서 사실상 아기가 직접 요양급여를 청구해야 한다는 점을 시사했다.

이에 대해 조영관 민변 공익인권변론센터 상근변호사는 “임신 중 업무상 유해요소에 노출돼 태아가 유산되면 산재보험의 적용대상이 되지만 태아가 선천성 질환을 갖고 태어나면 산재로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산재보험은 노동자의 업무상 재해를 신속하고 공정하게 보상하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법원의 법 해석은 아주 협소하게 이뤄졌다”고 지적했다.

이미 해외에서는 태아의 건강 문제를 여성 노동자의 건강 영역에서 다루고 있다.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산재 적용 대상자인 임신부의 직업병으로 상해가 발생한 상태로 태어난 아기가 법정 재해보상보험의 보험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될 경우 독일기본법의 평등원칙에 반한다고 판결하기도 했다.

우리나라 헌법 제36조 제2항은 ‘국가는 모성의 보호를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고 모성권 보호를 국가의 의무로 규정한다. 또 제32조 제4항에서는 ‘여자의 근로는 특별한 보호를 받는다’고 선언하고 있다. 그러나 산재 판정에 있어 여성노동자의 건강권은 제대로 보장받고 있지 못하다. 여성노동자들이 일상적으로 겪는 생리통과 생리불순 등의 여성 건강은 개인 탓으로 돌아가고, 일터에서 일어나는 성폭력 문제와 이로 인한 2차 피해도 주요 문제로 다뤄지지 않고 있다.

산재 인정에 있어 성별 격차도 두드러진다. 대한산업의학회가 주관한 ‘산재취약계층·사회적 취약집단 및 산업안전보건 행정서비스 취약집단의 재해실태와 건강보호방안’ 세미나 자료에 따르면 2003년 산재 승인건수는 남성노동자 8만1346건, 여성노동자 1만3578건으로 여성이 남성의 6분의 1에 불과했다.

이상윤 녹색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과장은 “여성 노동자의 건강 문제는 남성 노동자의 건강 문제와 성격과 종류가 다른 경우가 많은데, 남성 노동자의 시각에서 이를 평가하고 있다”며 “산재 인정 사례 중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은 극히 낮은 것도 여성에게 고유한 건강 문제에 대해서는 사회적 관심이 부족하고, 선입관이 작용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 과장은 “임신에서 출산에 이르는 모든 과정이 여성의 포괄적 건강에 해당한다”면서 “태아의 건강 문제까지도 여성 노동자 건강의 영역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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