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을 풀려면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 필요하다. 첫 단계가 낙태의 합법화다. 낙태를 합법화하면 낙태 시술을 건강보험 급여로 지원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긴다. ⓒ뉴시스‧여성신문
저출산을 풀려면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 필요하다. 첫 단계가 낙태의 합법화다. 낙태를 합법화하면 낙태 시술을 건강보험 급여로 지원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긴다. ⓒ뉴시스‧여성신문

한국사회에서 글 좀 쓰고 말 좀 한다는 사람은 누구나 저출산 현상의 원인과 해결을 나름대로 제시한다. 지난번 보건복지부의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 보완 대책이 나온 후 더욱 그러하다. 합계출산율 1.2에서 1.3을 유지하면서도 그나마 47만명에서 48만명 선을 유지하던 출생아 수가 이제는 43만명 수준으로 떨어지게 되다 보니까 상황은 급하게 되었다. 앞으로 출산율이 떨어지지 않고 심지어 소폭 상승하더라도 출생아 수는 감소할 수 있다. 

흔히 말하는 출산율은 ‘합계출산율’을 말한다. 가임여성(15~49세) 1인이 낳은 평균 자녀 수이며, 연령별 출산율의 합이다. 합계출산율 계산에서 분자에는 출생아 수가, 분모에는 가임여성 수가 들어간다는 의미다.

현재 자녀 출산을 본격적으로 하고 있는 20대 후반에서 30대 중반 여성은 1980년대에 출생했다. 한 해에 70~80만 명이 태어난 세대다. 1990년대 중반 이후 한 해 출생아 수는 60만 명대로 떨어졌고 2000년대에 들어서는 아예 40만 명대로 급락했다.

합계출산율 계산에서 앞으로 분모가 계속 작아질 것이기 때문에 출산율 자체가 현재의 1.2 수준 이하로 내려가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출생아 수 증가는 기대하기 어렵다. 결국 가능한 빠른 시기에 대체 출산율 2.1에 근접하는 성과가 있어야 저출산·고령화 사회의 공포 시나리오를 피할 수 있다. 

그런데 어떻게 여성 1인당 2명의 자녀를 낳게 할 수 있는가. 쏟아져 나오는 저출산 대책은 많은데 백약이 무효다. 이 상황에서 벗어나려면 이제는 모두가 좀 더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3차 저출산‧고령사회기본계획을 마무리하는 2020년 출산율 1.5 달성을 위해 난임시술 지원을 비롯한 ‘출생아 2만명+α 대책’을 추진하는 마당이다. 이렇게 ‘출생아 2만명 더’를 내세우고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1년에 약 17만명의 태아가 세상 빛을 보지 못하고 사라지고 있다. 기혼여성 낙태가 9만6000여건, 비혼여성 낙태가 7만2000여건이라는 정부 연구용역 보고서 결과다. 2010년 기준이다. 2005년 정부 연구용역 결과에서는 연간 낙태 건수를 약 34만건으로 추정했다.

이 중 비혼 낙태가 14만여건이었다. 실태 파악을 비교적 보수적으로 하는 정부 연구용역 보고서에서 17만~34만건의 낙태를 언급하고 있다면 그 실체는 더욱 클 수 있다. 가장 작게 추정하는 17만을 기준으로 하더라도, 이 중 10%의 태아만 세상 빛을 보게 한다면 1만7000명의 출생아를 더 볼 수 있다. 절반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면 약 8만명이다. 3차 기본계획의 목표 출산율 1.5를 뛰어넘어 해마다 50만명 이상의 출생아 수를 달성할 수 있다. 무수히 많은 다른 대책 없이도 출산율 1.7 정도는 가볍게 넘는다.

저출산 요인으로 인공임신중절, 즉 낙태를 제시하면 불편한 느낌을 갖는 사람이 많이 있을 것이다. 더군다나 전체 인구의 절반 이상이 기독교, 불교, 천주교를 열정적으로 믿는 종교적 분위기가 강한 한국사회에서 더 피하고 싶은 주제가 낙태다.

낙태는 우리가 인정하기 싫은 불편한 진실이다. 따라서 낙태문제 해결을 위한 정책적 대전환이 일어날 가능성은 크지 않다. 그러나 저출산을 사회문제라고 본다면 그리고 해결 방안을 찾아야만 한다면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 필요하다. 2010년에 잠깐 낙태를 징벌적으로 단속하려는 시도가 있긴 하였다.

그러나 처벌을 강화한다고 낙태가 줄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비혼여성 낙태 예방→비혼출산 지원 →다양한 형태 가족을 인정하는 사회적 분위기 형성→포용적 가족정책 실시’라는 사회·정책적 과정을 만들 수 있다면 저출산 해결의 중요한 실마리를 풀 수 있을 것이다.

그 첫 번째 단계가 낙태의 합법화다. 낙태를 합법화하면 낙태 시술을 건강보험 급여로 지원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긴다. 독일은 1990년대 초반부터 임신 12주 범위 내에서 낙태를 합법화해 의료보험 체계를 통해 관리하고 있다. 해마다 낙태 관련 통계 자료도 산출이 가능하다. 물론 이렇게 해서 낙태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자는 의미는 아니다. 불가피하게 낙태를 해야 할 경우에 건강정책 차원에서 관리를 하자는 것이다.

한국사회에서 낙태 문제를 음지에서 끌어내어야만 비혼출산 지원의 통로를 마련할 수 있다. 이렇게 해서 최근 정책 어젠다로 등장하고 있는 다양한 가족형태 인정, 포용적 가족정책을 통한 저출산 문제 해결의 중요한 실마리 하나를 풀 수 있다. 

전체 출산에서 혼외출산이 차지하는 비율이 한국은 연 평균 2% 수준이다. 반면 독일 35%, 미국 40.2%, 영국 47.6%, 스웨덴 55.2%, 프랑스 56.7% 등이다. 이 나라 사람들이 성적으로 문란해서 그럴까? 사랑의 결과 우선 함께 살아보고 그러다가 아이를 낳고 그래서 혼인신고를 하기도 하고 안하기도 하고 그러는 것이다. 부모의 사회적 지위와 부를 토대로 한 계급혼의 징후마저 보이는 한국사회 인식으로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그런데 언제까지 이렇게 살 것인가?

낙태는 가능한 하지 말아야 할 생명경시 행위다. 그러나 외면하면서 손가락질만 하는 우리의 모습이 더 나아보이지 않는다. 결혼으로 연결되지 않더라도 사랑의 결과로서 소중한 생명이 태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더 이상 위선적 태도와 불편한 감정으로 외면하지 말자.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